기쁨과 희망 다지는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집에 왔습니다.
이번엔 좀 아쉽고 억울한 기분입니다. 이제 할만 헌 게, 이제 덜 허덕거리고 오체투지 순례가 무엇인지 몸이 좀 알아듣고 맞춰주기 시작한 것 같은데 쉬고 오라니 말입니다.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걸 생각하자니 그게 더 아찔합니다. 가야할 길은 계속 가야하는 건데. 투덜대었더니 누가 그러더군요. 집에서도 계속 하고 있으라고요. 차례 때도 오체투지로 조상님께 인사하라고요. 허허, 귀기울여볼만 합니다.
10여 일 가까운 기간 동안 흰 눈 내리는 겨울만 빼고 사계절이 지닌 온갖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다 맛본 듯합니다. 비바람 속 오한에 떨기도 하고, 폭염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 누으며 불덩이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도 않고, 내가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녹슨 쇠조립품이 삐거덕거리며 가는 건지 모를 지경이기도 했습니다. 누우면 그대로 엎어져있고 싶고, 잠시 쉬고 나면 일어서기 싫은 감정도 수없이 밀려왔습니다.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하는 말은 그대로 복음입니다.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고, 하여 너덜거리듯 죄다 따로 노는 사지를 느끼는 것도 삼보일배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지경입니다. 그런 나를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수행이고, 내 몸 힘든 것 신경 쓰다가 나보다 몇 곱절은 더 될 옆자리 수경스님의 고통을 행여 놓칠까 각성해가며 길을 가는 것도 수행이겠지요.
다른 생각, 잡념이 들어설 시간도 기력도 없습니다. 매 순간 집중하고, 매 순간 자신을 봉헌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조급해봤자 저만 다칩니다. 그러다보니 삶의 군더더기들, 마음의 찌꺼기들이 절로 비워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가 봅니다. 자연스레 더 단순하고 평화로워지는가 봅니다.
이보다 더 누추하고 천해질 것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초라해질 것이 없습니다. 도로 위를 눈에 안 보이게 스쳐가는 한 점 먼지 같기도 하고, 어기적어기적 미련 맞게 기어가다 사람 발치에 또는 자동차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무기력한 미물 같기도 합니다. 더러운 길을 닦고 치우며 낡아가는 걸레 같기도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밥도 속편하게 얻어먹을 수 있으나, 하루 종일 애쓰며 박박 기어가도 거기서 거기니 딱할 지경입니다.
참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행보입니다. 그래서 감정도 속내도 외양도 포장이 불가합니다. 그냥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알몸뚱이로 남습니다. 애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신 앞에 온전히 작은 존재, 미약한 존재로 귀의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사제생활 33년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하셨다는 그 나이. 그렇기에 어쩌면 오체투지 순례길은 저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외람된 생각조차 듭니다. 더군다나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 해요(제가 문규현 바오로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시작한 것이기에, 제 행위를 근사하게 치장할 그 무슨 여지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도 바오로를, 모든 순교자들을 닮고자 애쓰는 것 외엔 말입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는 것을, 제 몸을 녹여야 촛불이 주위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수난과 죽음을 거쳐야 부활이 있다는 진리에 깊이 잠겨드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온 몸을 그리스도 앞에 바치며 사제품을 받던 그 때로 돌아가 사제성화의식 서약 갱신식을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크고 특별한 복입니다.
수경 스님 무릎이 앞으로도 큰 걱정이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고비는 넘기지 않았을까요. 저희보다 더 젊은 분들은 더 큰 희망과 목표를 갖기 바랍니다. 우리 늙은이들이 할 수 있는 데, 여러분은 그 이상의 어떤 도전도 할 수 있고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명절이라고 집에 돌아와 상념도 끄적일 수 있고, 고단한 몸을 누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 아픕니다. 심지어 횟칼 테러라는 있을 수 없는 사건으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촛불까지 있다는 소식은 놀랍고 충격적입니다. 쾌유를 빕니다. 큰 상심 속에 있을 가족들에게 마음 깊이 위로를 드립니다. 쇠사슬로 그 젊은 몸을 묶은 채 농성 중인 KTX 해고노동자들, 단식 94일 만에 다시 병원에 실려 갔다는 기륭 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촛불 수배자들과 구속자들,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며 박해받는 모든 분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드립니다.
저희 순례길에 함께 해준 촛불들이 있습니다. 행여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누가 될까 조용조용 뒤를 따르며 길벗이 되어주었습니다. 일손도 되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고맙고 예쁜지 말로 다 표현 못합니다. KBS지킴이 촛불들도 우리를 위해 먼 길 와주었습니다. 우리 순례길은 촛불에게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헌데 그 주인공들이 우리 곁에 있어주니, 그 착하고 따뜻한 기운보다 더 신나고 보약 되는 것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블로그와 여러 현장들에서 저희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해주시는 여러분들께 다시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말을 품고 다닙니다. 읊조릴 때마다 가슴이 젖습니다. “촛불아 힘내라. 힘내라.”
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더구나 명절이니 어떤 이들에겐 더욱 슬프고 외로운 시간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돌봐야 할 것이고, 또한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을 위로하고 마음 줄 수 있기 바랍니다. 팍팍하고 거칠어지는 때일수록 더욱 공동선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각자의 생활이, 삶이 순례이고 기도입니다. 길은 그 속에 있습니다.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는데 주변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겠습니까. 스스로 존엄과 품위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습니까. 기대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을 믿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길을 달라 투정하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갈 용기를 달라고. 낙담하고 주저앉지 않고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게 해달라고. 지금 여기에 튼튼하게 서되, 굵고 긴 호흡으로 멀리 더 멀리 보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모두 기쁨과 희망 다지는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2008년 9월 13일
사랑과 존경으로 문규현 바오로 신부 드림
이번 주일묵상은 아래에 따로 넣었습니다.
다양한 색깔로 우리를 빚어주시고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2008년 9월 14일 한가위 대축일
http://blog.daum.net/paulmun21/6704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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