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9월 9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9. 9. 07:5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9월 9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코린 6,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6,12-19

12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치열한 격전을 치루고 막사로 돌아온 해병은 허리에 찬 수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글쎄 수통에 무려 다섯 군데나 탄환에 맞은 흔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빗발치는 총알이 해병의 머리 위로, 옆으로, 겨드랑이 사이로, 가랑이 사이로, 맹렬이 스쳤지만 정작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하고, 대신 수통만이 탄환을 맞은 것입니다.

이렇게 무사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요? 단순히 운이 좋아서일까요? 바로 주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총알이 날라 오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스스로 탄환을 피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님의 보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준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깜짝 놀랄만한 기적으로 응답해 주셨지요. 바로 이러한 믿음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믿음은 한 없이 부족합니다. 아니 엉뚱한 믿음으로 인해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고장에 폭우가 쏟아져 그 지역이 물바다가 되고 말았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어떤 형제님께서는 비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마침 보트에 탄 사람이 오더니 이 형제님께 위험하니 빨리 타라고 했습니다. 이에 형제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하느님께서 돌봐주실 것입니다.”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사람이 보트를 타고 지나가다가 이 형제님을 보고는 타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형제님은 하느님께서 돌봐주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침내 수위가 너무 높아져서 이 형제님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천국에 가서 하느님을 만나자 이 형제님이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돌봐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에 하느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두 번이나 보트를 보내줬잖아. 뭘 더 바랐던 거야?”

맞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형제님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셨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살피기보다는 내 뜻을 내세워서 하느님의 돌보심을 외면하였던 것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을 제외한 예수님의 열 한 제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 모두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 보다는 주님의 뜻을 내세우는데 최선을 다했기에, 주님을 끝까지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을 내세우는데 최선을 다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주님께서 마련하신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주님의 돌보심에 감사하는 기도를 바칩시다.



주님의 기도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우리"라고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말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고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말아라.

이 기도문을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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