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사제의 열린 영성
박재만(대전가톨릭대학 교수․신부․영성신학)
오늘 전세계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봄”1)이라 일컫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위한 성령의 표지로 받아들이며 그 실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도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내적 쇄신과 민족 복음화 과제를 꾸준히 시도하여 왔다. 특히 선교 200주년 기념 대회와 서울 제44차 세계성체대회는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으며 근래 새로운 움직임들은 ‘새로운 복음화’를 모색하면서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란 전통적 개념으로서 ‘복음화’, ‘선교’와 근본은 같은 것이지만, 그 차이점은 그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들과 새로운 표현이 요청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그것은 교회가 복음화의 주체이신 성령께 더욱 순응적 자세로 개방하며 시대적 표지를 읽고 복음화되면서 인간과 그 세계를 낡은 것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스도화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복음화의 원주체, 제일 주역은 성령이시지만 그 협력자는 교회 구성원 모두이다. 그리고 새로운 복음화의 대상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 앞선 대상은 교회 내부와 그 구성원들로서 누구보다 먼저 사제들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복음화의 주요 봉사자인 사제는 어떠한 자세로 그 사명에 임해야 할 것인가? 어떠한 영성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 먼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입각한 사제의 영성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다음, 이어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요청되는 사제의 쇄신적 영성을 전망해 보겠다.
Ⅰ. 사제의 사도직 영성
사제직은 사제 자신의 완성을 지향하기보다 오히려 인류의 복음화 사명을 위한 헌신적 봉사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사제직에 불리는 동기는 사제 개인의 성화보다는 인류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사도적 사명을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직무 사제직’은 사제의 신원을 그 사명 수행 안에서 찾는다고 표현한다. 사제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일꾼이며 목자로서, 활동을 통하여 역사 안에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의 온 백성과 일치하며 여러 방법으로 교회의 사명을 살고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신원을 찾는다.2)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가 성성에 이르는 고유한 길은 “그리스도 의 성령 안에서 사제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3)이며 그는 “수행하는 그 직무 전체를 통하여 완덕생활에 진보하는 것”4)이라고 가르친다. 공의회는 한편 그 직무 수행을 위하여 사제에게 맞갖은 영성이 요청된다고 강조한다. “사제의 성성 자체는 그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크게 이바지한다.5)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백성에게 그분의 은총을 전달해 주며 성화시키는 도구로 선택된 사람이 사제라면, 그의 직무는 그에게 당연히 성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것을 위하여 하느님은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신다.
1. 성성에의 소명과 영성생활
사제의 성성에의 소명의 첫 기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인 “재생과 성령의 도유로 축성되는”6) 세례성사의 은총이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생활의 상태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인 성성에 불린 것이다.7)
사제가 성성에 불리는 다른 이유는, 고유하고 특별한 것으로서 신품성사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다. 사제는 “성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새로이 하느님께 축성되었고 그로써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세기를 통해 계속 할 수 있어야”8) 하는 것이다.
사제의 성성의 또 하나의 기초와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로서 사제의 축성과 그 사명이다.9) 성품성사를 통해 사제는 특별한 인호를 받으며, 머리이시고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이 같은 존재론적 닮음은 사제에게 삶과 거룩함에 있어서도 그분과 더 가까운 닮음을 요구한다. 사제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사제의 도구 역할이 자신의 영성의 미흡으로 인해 약화되거나 비능률적이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효율적 도구로서 생생히 살아있어야 한다. 실로 그리스도의 산 도구로서 그리고 그분의 위격 안에서 수행해야 하는 직무는 사제에게 끊임없이 성숙하는 성성과 덕행을 요구한다.
2. 복음화 직무와 영성생활
사제는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이 영광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완성된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이 깨닫고 고맙게 받아들이며 또한 사람들이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의 그 업적을 드러내는 것이다10) 이러한 직무 수행을 위하여 어떤 자세의 영성이 요청될까?
⑴ 가르침의 직무와 사제의 영성
사제의 첫 중요 임무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 즉 신앙을 전해 주고 신자들에게는 그 신앙을 잘 보존케 하며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11)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꾼으로서 사제에게 다음과 같은 합당한 준비가 요청된다.12)
㈎ 매일 영적 양식으로 말씀을 읽고 듣는다.
㈏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묵상한다.
㈐ 진리 안에 고요히 잠기며 관상한다.
㈑ 가르친 말씀을 자기 안에 실현하며 증거적 삶을 산다.
실로 거룩함의 근원이시며 모범이신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히 일치하고 그분의 성령으로부터 인도될 때 가르침의 결실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⑵ 성화의 직무와 사제의 영성
하느님만이 홀로 거룩하시고 인간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협력자로 인간들을 택하여 그들이 성화사업에 겸허하게 봉사하기를 원하시는데 사제는 성품성사를 통하여 바로 그 직무를 받는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주체로서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사제 임무를 수행하시는 전례와 성사들 안에서 특별히 성화 임무를 수행한다.13) 사제의 주요 성화 업무는 성사 집행, 신자들의 적극적 성사생활 독려 그리고 성체성사의 생활화이다. 성체성사는 또한 사제의 모든 영성생활, 수덕 및 선교활동의 원천이며 중심이고 정점이다.14) 그는 미사 성제를 통하여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행위에 합치시킴으로써 날마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친다. 미사는 또한 그에게 목자적 애덕을 배우도록 하는 주요 강좌이다.
⑶ 다스림의 직무와 사제의 영성
사제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하여 영적 권한을 받는다. 그는 “위탁된 대로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임무를 수행”15)하며, 성품성사를 통해 권위와 봉사의 두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한다.16) 사제가 공동체 건설을 위해 수행하는 권위는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며, 봉사를 통해 다른 이들로부터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봉사를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봉사하러 오신 “주님의 모범을 따라 모든 사람을 아주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17) 사제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성숙을 돕기 위한 봉사자일 뿐 아니라 봉사를 통해 자신의 영적 성숙을 도모해야 한다. 모범적 삶 자체보다 더 훌륭한 교육 자료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Ⅱ. 열린 자세의 사제의 영성
성삼위의 친교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18)인 교회의 사명은 크게 네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신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말씀에 대한 공부와 묵상이 요청된다.19)
둘째, 성령 안에서 성부께 대한 그리스도의 예배에의 참여이다20) 그리스도의 현존(마태 18.20 참고)중의 공동체의 형성, 전례 특히 성찬의 전례, 성사생활, 친교, 봉사, 애덕의 활동 등이 이 사명에 속한다.
셋째,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사명이다.21) 이것은 역사와 상황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으로 선교활동, 세계의 질서와 제도의 복음화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 등이다.
넷째, 종말적 및 관상적 성격을 띠는 요소이다.22) 이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 성숙으로서 기도의 생활화, 기도의 성숙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은 교회의 소명과 사명에 참여하고 일치하며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회의 주요 사명은 또한 사제의 사명이며 그의 영성생활의 방법이고 성화의 방편이다.
새로운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하여 사제는 어떻게 영적으로 쇄신되고 성장해야 할 것인지 네 가지 측면에서 반성해 보면서 전망해 보도록 한다.
1. 사제의 지속적 쇄신과 영적 성장
대희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교회의 절박한 과제인 ‘새로운 복음화’를 수행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리고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사제들의 시대적 표지 인식과 영적 쇄신이다. 사제 중심적인 현교회 사목제도 안에서 교회의 쇄신과 발전 여부는 일차적으로, 때론 전적으로 사제들의 영성과 사목 자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근래의 교회의 문헌들, 특히「현대의 사제 양성」은 사제들의 끊임없는 쇄신과 성장을 촉구하면서 그들의 계속 혹은 평생 교육을 권장하고 있다.23) 우리는 급속도로 전문화되어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세분화되는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고 기여한다. 그들은 효율적 성과를 위하여 그리고 도태되지 않기 위하여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여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들을 습득하고자 한다. 한편 사제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열성적으로 연구하면서 쇄신되고자 하는가?
사제들의 계속 교육과 쇄신은 언제 어디서나 늘 필요한 것이었으니 오늘날 특별히 더욱 요청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살고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가 급격히 변화되어 가며 그로 인해 교회 내부의 상황도 걷잡을 수 없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경제 성장 위주로 근대화, 산업화되면서 점차 전통적 가치가 전도되고 혼란스러우며 반종교적, 무신론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한편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사회의 물질적 사고방식과 편의주의의 영향으로 세속화되어 가며 복음적 생활에 무관심을 표명하는 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사제는 어느 시대보다 더 복음 증거의 삶을 통해 가치 왜곡에 도전해야 하고 육화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며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제는 더욱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목 방법을 연구하면서 사명의식을 고취시키고 또한 끊임없이 영적으로 쇄신되어야 한다. 시대와 상황에 맞는 갖춤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목이 낙후될 뿐 아니라 사제가 오히려 세속화에 젖어들어 가게 될 것이다.
사제 양성은 실로 서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평생토록 지속되는 것이며 성성과 사제 성소로 부르심에 응답은 일생 동안 수없이 반복되면서 성숙되고 확고해지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러하듯이 사제도 자신의 성소 안에서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완성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계속 교육은 사제 양성의 모든 측면(인간적, 지적, 사목적 및 영적 측면)들을 조화롭게 통합시키고 그러한 측면들이 서서히 내적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이론적․지적인 교육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착한 목자의 사랑에 바탕을 둔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페 4,13)을 지향한다. 오늘의 사람들은 사제가 연구하고 배우며 신학 및 사목적 풍부한 지식을 갖추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말하고 가르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는 사제들의 삶을 보기를 더 원한다.
2. 공동체 안에서 친교와 협력 사목
사도행전(2,43-47 4,32-37)이 전해 주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친교는 교회생활의 본질적 요소이다. 헌신적 사랑과 긴밀한 일치, 한마음이 되어 바치는 열렬한 기도와 말씀의 나눔, 전례 특히 성찬의 전례와 영성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삶, 소중한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거하는 삶 등은 그 공동체의 친교의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복음화되면서 복음화 활동을 해야 하는 교회 공동체24)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나날이 성숙하고 성화되면서 또한 공동체를 성장시켜야 한다. 이것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기본 조건이고 활력이며 증거 자체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 본당 공동체는 끊임없이 복음화되어 가는 친교의 공동체인가? 유감스럽게도 근래 한국교회는 외적으로 많이 성장하였으나 내실과 영적 성장이 병행되지 못하고 있음이 여러 측면에서 지적되고 있으며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사와 전례에 대한 이해 부족 및 재교육의 미흡, 성사 생활의 미숙 등으로 수계생활 불이행자들이 늘고 있으며 예비자들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또한 본당의 대형화는 교회의 본질 요소인 사목자와 교우 그리고 교우들 상호간의 친교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한편, 신자수에 비해 너무 부족한 사목자들의 과중한 업무를 위한 활동의 한계성과 시대화 상황에 토착화하지 못하는 보수적 사목의 낙후성이 드러나고 있다. 사목은 지나치게 사제 중심적이며, 따라서 사제들은 과도한 업무에 분주하고 목자적 보살핌이나 봉사적 섬김보다는 권위적 행정가나 형식적 관리자로 전락하기 쉬운 상황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의 시대적 표지를 주의 깊게 읽으면서 교회의 쇄신에 적극 앞장서야 할 자기 쇄신적 사제들이 많아져야 한다. 공동체의 친교와 활성화는 사제의 영적 자세와 사목적 배려에 많이 달려있다.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할 수도 있고 그 불이 꺼지게 할 수도(1데살 5,19 참조)있는 것이 사제의 역할인 것이다.
사목자는 공동체의 수도자들뿐 아니라 구성원의 대다수인 평신도들과의 협력 사목 및 동반 사목을 혁신적으로 연구하고 과감히 실현해 나가야 한다.
초기 교회에 사도들이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하여 여러 관리 업무를 맡길 보조자들을 뽑았다는 사실(사도 6,1-7 참조)과, 초세기 교회 공동체들 안에서 사제들뿐 아니라 다양한 카리스마에 따라 평신도들이 설교, 교리강좌, 순회선교, 호교활동 등 사도적 활동에 능동적․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25)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초기 평신도들은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선교하다 복음 증거의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교리서, 호교론 등을 쓰고 교리 및 영성의 토착화에 놀라운 모범을 보임으로써 평신도들의 믿음직스럽고 기대 큰 잠재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실증하였다.
4세기 콘스탄티노 이후 교회의 구성원들의 법적 위치가 점점 분명한 구별을 이루고 교계제도가 강화되면서 평신도 생활 상태가 점점 평가 절하되었고 그들의 사도직, 카리스마적 활동이 점차 제한되고 사라져 갔다는 역사와, 한국 초기 교회의 활발했던 평신도들의 사도직이 교계제도가 확립되고 안정되면서 점차 약해졌고 미미해졌다는 사실은 특히 오늘 우리 교회의 경직된 사목 구도의 문제점을 반성하게 한다. 오늘의 사목자들은 평신도들 안에 나타나는 성령의 표지를 읽으며 그들의 영적 요구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카리스마와 창의력을 존중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그들을 위한 교육제도와 방법,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과 제도를 과감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들의 협력 사목은 사제의 수가 부족하고 갑자기 업무가 늘었다는 데에 그 근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유한 사명과 과제를 새삼 깨우쳐 주고 되돌려 주면서 협력을 촉구하고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제들은 닫힌 권위주의와 보수적 사고를 버리고 친교와 협력을 위한 혁신적인 열린 영성을 지녀야 한다.
3. 세상을 향한 복음적 개방성
교회 역사 안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진 복음화 혹 선교는 구원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여겨진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일방적으로 구원의 진리를 수용하고 세례성사를 받도록 활동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그 성공 여부는 입교자의 수계 생활자의 수를 헤아려 양적 성장 기준에서 가려졌다. 그러나 오늘 새로운 복음화로서 선교는 그러한 일방적 교회 부식 확장이 아니고, 복음의 진리의 선포와 대화 그리고 증거를 통한 인류와 세계의 변화 및 쇄신을 이차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교회가 스스로 복음화하면서 우선 세계와 대화 및 협력을 통해 빛을 비추고 영향을 미쳐 복음의 정신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다.26) 그러므로 복음화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위배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원천과 동향,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주어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은 것”27)이다.
교회는 복음 안에서 현세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고 활성화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 전반 분야의 제도들과 기구들을 복음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구원,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과 회복에 이바지하며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려야 한다.28) 그러므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사목자는 관할 내의 단체들이나 신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예비자 교리, 전례 및 성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 사제는 시대적 표지를 읽으면서 세상 안에 살고 있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러한 복음화 활동에 협력 사목자들로서 공동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 참여하도록 교육하고 양성하며 고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신자들의 영성생활과 사도적 활동이 지나치게 본당 중심적이고 사제 중심적이며 또한 내향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29)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서 사목자는 사목을 사제 중심에서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인 평신도들 중심으로, 지나친 본당 중심에서 좀더 사회 지향적으로, 대형의 공동체에서 소공동체적 친교의 모습으로 시급히 전향, 쇄신해야 한다.
평신도의 영성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30)이라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일치의 삶을 자신의 일상생활과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흔히 본당 안에서 자신들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신자들도 가정, 직장, 사회 안에서 복음 증거적 삶과 활동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근래 30여 년 사이에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사회 여러 분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에 대처할 사제들의 복음화 자세와 방법 그리고 영성은 어떠한가? 또한 예비자들의 수가 줄고 있는 이유를 신자들의 협력 부족 탓으로만 돌리면서 그 원인 규명과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우리 본당들은 지역사회에서 개방적 디아스포라(diaspora)인가 아니면 집단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게토(ghetto)적 존재로 여겨지는가? 본당 내 건물 및 공간을 제한적 시간이나마 지역사회에 개방하여 활용토록 하는가? 오히려 기존 유치원, 노인학교까지 폐쇄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다른 종교와 종파의 사람들과의 대화와 친교의 자세는 어뗘한가? 이러한 것들을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이유와 그에 따른 정당화 이론은 수없이 많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데 가까운 길과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보다 사제들의 열린 자세의 영성이다.
4. 성삼위와의 친교생활
사제가 교회 공동체 내부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근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영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삼위의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신 스승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사제의 쇄신의 원리와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비결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의 지상에서의 삶과 활동은 모두 성부의 그분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와 일치해 계셨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활과 사명 수행에 인도자 역할을 하셨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사제가 갖추어야 할 자세로, 위에서 언급한 지속적 자기 쇄신 및 성장, 공동체 안에서 친교와 협력 사목 그리고 세상을 향한 복음적 개방성은 성삼위의 친교 안에서 중심점을 찾으며 실현 가능해지고 풍요롭게 된다. 성삼위와의 친교생활이 그 모든 활동을 위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제들은 실로 많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각종의 어려운 문제점들에 봉착해 있으며 이로 인해 마음과 생활에 있어 분산되기 쉬운 상태에 처해 있다. 따라서 그들의 기도 시간이 점차 감소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이를테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는, 일반적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그러했듯이 사제의 생활에 있어서도 영성의 수직적 관계로서 기도가 지배적으로 강조되었다면, 근래의 신학은 보완적 차원에서 수평적 방향으로의 개방의 필요성을 더 많이 강조해 왔다고 하겠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어렵게 했거나 사목활동 및 애덕 실천에 있어 편협했던 태도에 균형을 주고자 하는 조화로운 영성 방향 제시였다고 이해될 수 있다.
실로 수평적 개방의 경향은 놀랄 만한 결실을 이루면서 급속히 교회 안팎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교의 사명감, 종교간 및 종파간의 대화, 복음 정신 안에서 사회적 책임의식, 정의 구현의식의 고조, 가난함이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영성의 수평 측면이 때론 지나치게 과장되어, 하느님과의 친밀하고 진지한 대화로서의 기도가 많은 이들에게서 약해졌고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을 만나도록 이끌어주거나 신앙적 체험으로 그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영감적 활력이 점점 감소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또한 사제적 헌신 자세가 약화되고 흐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활동은 기도의 연장이 아니라, 차라리 ‘활동이 곧 기도’라고 정당화하게 된다. 이는 사명 수행에 기도를 분리하지 않으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기도와 활동을 통해 백성들에게 참된 봉사를 실현하신 것같이, 사제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봉사해야 하나. 사제의 업무는 그를 기도로 이끌어주고, 한편 그의 기도는 업무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오늘의 사제는 그 어느 때보다 그가 성성에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되어선 안된다.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수행되면서 더 나은 도구로 성화되는 기회이고 방편이어야 한다. 사제가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없이 활동할 때 그는 단순한 행정가나 관리인일 수 밖에 없다. 진정으로 기도하지 않을 때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어려우며, 성령께 개방하지 않을 때 모든 활동의 주체가 자기 중심적인 ‘나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Ⅲ. 맺음말
“성삼위의 친교를 드러내는 표지”31)인 교회의 일꾼으로서 사제는 모든 것을 성삼위의 친교 안에서 보아야 하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복음화 활동도 그 안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 사제는 자신이 그 안에 현존하시는 성삼위의 사랑의 표지이며 도구임을 진정으로 의식할 때 그의 사도직 자세는 달라질 것이다.
사제가 성삼위의 친교 안에서 구성원들과 협력할 때 본당 공동체의 모습은 새로워질 것이다. 동료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교우들 모두가 같은 믿음의 공동체의 가족이며 하느님의 모상들이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더욱 형제애를 느낄 것이며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친교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제가 타종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하느님, 한 주님, 한 성령과 세례 안에서 같은 형제자매들이고 그들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복음을 전해 듣게 되고 주님을 알고 믿게 된다는 것을 인정할 때 차이점과 분리감을 극복하고 오히려 고마워할 수 있으며 친교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제가 타종교인과 비종교인들도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같은 형제자매로 받아들일수 있을 때, 차차 참된 믿음으로 인도해 주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들을 존중하며 친교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제가 성삼위의 친교 안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새로운 전망이 펼쳐진다. 하느님께로부터 본래 좋은 실재로 창조되었고(창세 1장 참조)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에 위협받고 있지만 결국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한다면 사제는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개방적, 도전적 자세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이 사제가 성령께 개방하면서 성삼위의 친교와 사랑의 일치라는 혁신적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삶과 인간관계 그리고 복음화 사도직은 참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러할 때 사제는 독선이나 권위주의, 우월감이나 열등감, 폐쇄적 울타리, 좌절 그리고 선입견이나 섣부른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신천본당 정경희(가브리엘라) 자매님의 도움으로 입력된 글입니다.
<사목, 1996년 8월호, pp.7-18 / 인천교구 시노드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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