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리고 잊으라는 말씀도 숱하지요. 다가올 세상을 두려워 말고
지나간 일을 잊을 때에 지금을 충실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레미야에게 “떨지 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들립니다. 예레미야는 예언자의 삶을
매일 살게 될 것이고 그 고통스러운 삶을 주님께서 주신 힘으로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어린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예언자로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며 미리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딱했을까요!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과 두려움은 지난 일을 기억한 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상상하는 일에서 비롯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때문에 복음이 전하는 헤로데의 처지가 딱합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고
그를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보호해주었지만 결국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그를 죽이고 맙니다.
헤로데는 ‘알고’ ‘두려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두려워할지라도
오늘 내가 세상의 것들에 연연하여 살아간다면
복음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잔치’에 쏠린 마음으로 인해
이미 ‘알고’있는 복음에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