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오불 학자오불 君子五不 學者五不
잠시 창 밖에서 눈을 떼고 있는 동안 비가 내렸나보다. 마른 땅이 물기를 머금고 촉촉하게 젖으니 금방이라도 연두 빛 새순이 틈새로 얼굴을 내밀 것만 같다. 요 며칠 동안 불어 온 훈훈한 바람까지 가세한다면 봄의 싱그러움이 이미 곁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멀리서 오신 손님들과 함께 ‘강암서예관’을 찾았다. 전주 남천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한가롭게 옛 묵향의 세계에서 행복한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래층에서 강암剛庵 송성용의 글씨를 감상한 후에 이층에 올라 이항복의 글씨와 단원의 그림 등을 다시 보면서 문득, 조선 후기의 학자 홍만종洪萬宗이 평생 지켰다는 군자5불君子五不을 생각했다.
군자오불이란 군자가 해서는 아니 될 다섯 가지의 덕목을 말하는데, 제1불은 남에 따라 내 지조를 바꾸지 않는 것이다. ‘남나름이즘’이 아니라 ‘내나름이즘’이라고 할 수 있다. 군자의 제2불은 싫고 밉다고 하여 남을 모함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차별적으로 인신공격만을 일삼는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군자 제3불은 귀천에 따라 대접을 달리 하지 않는 것이요. 군자 제4불은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며, 군자 제 5불은 남의 실수나 흉을 들춰내지 않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훨씬 다변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군자오불은 오히려 더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항상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는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처럼, 화선지위에 먹빛으로 담긴 옛 성현의 글씨처럼 그렇게 날마다 깊은 감동을 주고받으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역학적으로는 전자가 통과할 수 없는 장애물의 터널링 현상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반도체에 불순물을 첨가함으로써 고체상태 반도체의 특성을 조절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1973년, 32세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에사키 레오나(江崎玲於奈, Esaki Reiona)박사가 훌륭한 연구자가 되기 위해 평생 스스로 다섯가지의 금기사항을 지킨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학자오금學者五禁인 셈인데, 나는 이것을 학자오불學者五不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있다. 학자 뿐 아니라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비롯하여 평생교육이 필요한 현대인들이 꼭 담아두어야 할 의미이다.
학자의 제1불은, 이전에는 어떠어떠했느니 하는 과거의 관습이나 관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요. 제2불은 유명 하느니, 권위가 있느니 하는 등의 명성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제3불은 세상 잡사에 관심을 흩뜨리지 않는 것이고, 제4불은 좌절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음이요. 제5불은 만사를 통달한 체 말고 어린이처럼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선생님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보다 즐거운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세미나 및 워크숍을 기획하던 얼마 전의 일이다. 협의 중인데 멀리 강원도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최근 어떤 실험 자료를 개발했는데 전주에서 하는 워크숍에 참여하여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동준자바실험실’이라는 인터넷사이트를 모두 잘 알고 있다. 중학교 현직교사인 그는 가상 과학실험 자료를 만들어 우리나라 과학교육에 혁신적인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사람으로 전화를 건 장본인이었다. 워크숍 날 손수 제작한 자료들을 들고 와 참석한 전북의 초·중등선생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설명하고 시연하는 모습에는 바로 학문하는 사람의 태도가 살아 있었다.
어느 경우에는 실제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크게 평가하고 과대포장은 물론 확대하여 내보임으로 이내 실망하게 만드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유심히 살펴 찾아보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진정한 군자로서 학문하는 태도를 바르게 지닌 사람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며 어린이처럼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추운 겨울이 지나면 꽃향기 날리는 봄이 오는 것이리라. 그래서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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