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야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제2독서 로마 8,18-23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어제 저녁 미사 후에 집 축복식이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좀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운동 삼아서 걸어서 다녀오기 위해 집을 나섰지요. 그런데 비가 내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산이 없었지요. 왜냐하면 우산이 제 차 안에 있었는데, 그 차를 제 동창신부가 잠시 빌려 갔었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비가 오지 않았고, 만약 비가 오면 가게에 들러서 우산을 사면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다행히 그 집에 갈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 축복을 하고서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그 집이 아파트였는데, 새 아파트 단지라서 길을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하늘에서는 구멍이 났는지 비가 쏟아 내리지요. 비를 흠뻑 맞으면서 이 길로 가면 막혔고, 또 저 길로 가도 막혔고요. 그래서 아주 잠깐 동안 쏟아지는 비에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아파트 단지를 나온 상태에서 제 모양은 형편없었지요. 이 상황에서 우산을 사기 위해서 가게에 들어선다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당까지 그냥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비가 멈춘 상태였거든요. 또한 우산이 있는데, 우산을 사는 것도 낭비인 것 같었고요. 하지만 저의 판단은 틀렸습니다. 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왜 이렇게 아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지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제 판단이 틀렸고, 비 오면 가까운 가게에서 우산을 사면 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역시 잘못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렇게 잘못 판단해서 스스로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을 안일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어려움 속에 빠진다는 것이죠.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 말씀을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더욱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은 길가, 돌밭, 가시덤불 같은 곳에 좋은 씨앗을 뿌리십니까?"
길가, 돌밭, 가시덤불 같은 곳에서 좋은 씨앗이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농부는 좋은 땅을 찾아서, 만약 좋은 땅이 아니라면 자신의 온 힘을 기울여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든 뒤에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농부는 게으른 농부일까요? 귀찮아서 씨앗이 자라지 못하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 같은 곳에 씨앗을 뿌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비유되는 좋은 씨앗은 올바른 사람의 마음에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고 차별 없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뿌려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 씨앗을 어떻게 일구어 나가는가 라는 것이지요. 안일하고 섣부른 생각으로, 또한 이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마음만을 간직하고 있다면, 내 마음을 길가, 돌밭, 가시덤불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주님의 계명을 잘 지켜 나간다면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받은 내 마음의 밭을 기름지게 하고 풍요롭게 해서 싹틔워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의 밭은 과연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을까요? 혹시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이 뿌리 내릴 수 없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은 아니겠지요?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합시다.
꿈은 희망을 낳는다(프리드리히 실러, ‘꿈은 희망을 낳는다’ 중에서)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현명하다는 것은 아름답게 꿈을 꾸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요.
꿈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 있다는 것은
이상이 있다는 것이요,
비전을 지닌다는 것이다.
비전을 지닌다는 것은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꿈을 상실한 사람은
새가 두 날개를 잃은 것과 같다.
비록 힘없는 하찮은 존재라 하더라도
꿈을 가질 때 얼굴은 밝아지고
생동감이 흐르며 눈에는 광채가 생기고,
발걸음은 활기를 띠고
태도는 씩씩해 지는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꿈꾸는 자가 인생을 멋있게 사는 사람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참 인생을 아는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인생을 사는 듯이 살고,
아름다운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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