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도구 Ludovicus 2008. 6. 19. 07:39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집회서 48,1-14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 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5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6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7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8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복음 마태오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며칠 전, 우리 성당에서는 큰 일이 날 뻔 했습니다. 글쎄 성당 전등의 안정기가 터져서 큰 화재를 가져올 뻔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성당의 전등을 하나도 켜지 못하고 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런데 미사를 하면서 ‘왜 하필이면 지금 전등이 나가서 이런 암흑 속에서 미사를 해야 하는 거야? 낮 미사가 있는 다른 날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아?’라는 불만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미사를 하면서 곧바로 바뀔 수밖에 없었지요.

만약 미사가 없는 시간에, 다시 말해서 성당에 아무도 없을 때 이러한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한 성당의 전등이 아니라, 목소리를 담당하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서 마이크를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다행히 성당의 전등 쪽만 문제가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런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상황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내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스스로 나쁜 상황으로 내 자신을 이끌고 가더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글이 생각납니다.

옷을 입으려는데 단추가 떨어졌다. 다른 옷을 입고 나가는데 엘리베이터 점검이라 걸어 내려가란다. 참고로 우리 집은 17층이다. 차를 타고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제네레이터 고장으로 차가 멈춰 서 버렸다. 보험사에 차를 맡기고 총알 택시로 약속 장소에 왔다. 그런데 상대가 급한 사정으로 못 나온단다. 정말로 미안하단다. 그래서 근처에 알던 서점에서 책을 고르며 기분전환을 하려했다. 서점이 없어졌다.

나는 그날 일어난 일에 답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의미를 담으려 하지도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러자 한 동안 나에겐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가 땅콩 같은 추억이 됐다.

이 글에 나오는 주인공은 소위 머피의 법칙과 같이 부정적이고 안 좋은 일만 계속 내게 주어지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않지요. 그 결과 나쁜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때의 일들이 좋은 추억으로 말할 수 있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실 용서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들을 간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스로 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러한 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용서할 것을, 특히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생각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제 용서해야 합니다. 그때 앞서 나쁜 일들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나의 모든 일들 역시 좋은 추억으로 간직될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요? 용서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보세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서…….



내 마음의 주인은 바로 나(‘좋은 글’ 중에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력해야 합니다.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듯
내 마음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간수할 건 간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과
칭찬의 말 등은 간직해도 좋지만
필요도 없는 비난이나 고통의 기억은
쓰레기나 잡동사니 치우듯이
과감히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밭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립니다.

버려야 할 쭉정이들을
그대로 쌓아 두거나
잘 간수해야 할 알곡들을
미련하게 내버리면서
행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마음 밭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그 밭을 가꾸는 사람도 자기입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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