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2008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6. 16. 06:17
2008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열왕기 상권 21,1ㄴ-16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복음 마태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어느 날 모 신문에, 아버지를 판다는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현재 노령이고 몸이 편치 않아서 일금 10만 원이면 아버지를 팔겠다는 것이었지요. 그 광고를 본 사람들은 혀를 차며 ‘세상 말세다’라고 말하면서도, 다 늙은 할아버지를 누가 사겠냐면서 쑥덕거렸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를 접한 어떤 부부가 만사를 제쳐놓고 광고가 난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집은 으리으리한 저택이었고, 할아버지 혼자 이 저택을 지키고 있었지요. 이 부부에게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내가 잘 아는 할아버지가 부탁해서 광고에 낸 건데, 그 영감은 몸이 좋지 않아요. 그런 노인네를 왜 사려고 그러나?”

이에 부부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살다가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부모 없는 설움이 늘 가슴에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몸이 아프거나 집안이 어렵지 않은 가정이라면 누가 자기 부모를 팔겠다는 광고를 내겠느냐고 말하면서,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화목하고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기 부부에게도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준비한 돈 10만원을 정성스럽게 할아버지 앞에 내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광고를 낸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물려 줄 양자가 필요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대부분 돈만 밝혀서 사람 됨됨이를 떠보기 위해 이러한 테스트를 했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 할아버지가 자신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데, 지금 양자를 두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을까요? 그러나 노령에 힘도 없는 아버지를 판다는 광고를 보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지요. 단지 그런 광고를 낸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에만 급급할 뿐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몸으로 보여주는 사랑의 실천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말만으로 멈출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예수님께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그대로 본받고 따르라고 말씀하시지요.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는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바로 말만 하는 사랑이 아닌, 행동으로써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합시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좋은생각’ 중에서)

일본 야마구치 현에 위치한 이와쿠니라는 해안 도시는 1925년 이후부터 섬유, 방적 등 공장 시설이 들어서 공업 도시로 발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근 공장의 폐수가 바다로 방출되는 바람에 이와쿠니는 큰 위기에 처했다. 폐수로 인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어부들은 당장 싱싱한 물고기를 잡을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해졌다. 이와쿠니 어부들은 폐수를 흘려보낸 방직 회사에게 그 책임을 따져 물었다. 그러자 방직 회사에서는 죽은 물고기나 기형이 된 물고기들을 잡아 오면 모두 사 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어부들은 바다에 나가 열심히 물고기를 잡았고, 방직 회사는 마치 큰 인심을 써서 변상하는 듯 그 물고기를 사 들여 폐기했다. 그렇게 이와쿠니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어부들이 하나 둘 고기잡이를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이유는 고기 잡는 보람이 없어서였다. 그동안 어부들은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매서운 바닷바람도, 거친 풍랑도 이겨 냈다. 하지만 먹을 수 없는 오염된 물고기를 잡아 파는 동안에는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폐수 사건으로 이와쿠니 어부들은 큰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일이 주는 보람’임을 깨달았다. 이후 어부들은 이와쿠니 해안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해안이 늘어선 공장 때문에 해안이 오염되지 않는지 수시로 살펴보고, 쓰레기 줍기 운동을 펼치며 일하는 보람을 주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