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코 12,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얼마 전, 어떤 식당에 들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 들어가고 싶어도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식당에 들어가는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니 위에 센서가 있습니다. 자동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센서 앞에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습니다. 그러면 센서가 작동해서 문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역시 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가게를 열지 않았나 싶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서는 종업원들이 열심히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안의 종업원들을 부르기 시작했지요.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그러나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무도 열어주지를 않습니다. 이 식당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지요. 저는 특별히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식당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 옆에 이상한 버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버튼에는 이러한 글씨가 적혀 있더군요.
“여기를 눌러주세요.”
이 버튼을 누르니, 신기하게도 문이 열립니다. 맞습니다. 자동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문 옆에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그 버튼이 작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에 확 띄는 큰 버튼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자동으로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는 바보같이 손만 흔들고, 또 말로써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중요한 한 가지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자신이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느님 나라도 이럴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 실천이라는 이 한 가지가 없이는 하느님 나라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힘의 원리가 지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큰소리 뻥뻥 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모습은 이렇게 힘의 원리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포도밭의 소작인들 역시 힘의 원리를 내세우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주인까지도 무시하여, 주인의 아들까지 죽여 버리는 힘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과연 어떻습니까? 결국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주게 됩니다.
힘의 원리만을 내세우는 소작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게 철저히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 나라로 상징되는 포도밭에서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힘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내세우는 우리들이 됩시다.
실패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박성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중에서)
최고의 스키 선수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스키를 잘 타는 법이 아니라 잘 넘어지는 법입니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건 에디슨의 일화입니다.
에디슨이 수많은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하자 한 기자가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6,523번의 실험 끝에 이 전구를 발명하셨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6,522번의 실험은 시간 낭비였던 것 아닙니까?"
그러자 에디슨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간 낭비라니요? 나는 6,522번의 실험 끝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는데요."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세상은 많은 실패와 좌절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한 채 고개 숙이고 웅크리고만 있지 마십시오.
이제…… 내가 실패했던 일.
그 일이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