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5월 10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

도구 Ludovicus 2008. 5. 10. 09:1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5월 10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8,16-20.30-31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7 사흘 뒤에 바오로는 그곳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조상 전래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20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30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복음 요한 21,20-25

그때에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가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는 소위 꽤 잘 나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부는 그리 썩 잘 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재주와 넘치는 끼로 친구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친구였지요. 사실 저는 이 친구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도 이 친구처럼 그러한 재주와 끼를 갖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하고, 아주 힘들게 살고 있다더군요.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어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위로와 안타까움을 받고 있을 뿐이네요.

이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너무나도 많이 판단하고 있으며, 나의 틀 안에 상대방을 맞추려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 주일학교 교리 선생님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누구랑 누구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남자가 아깝다.’ ‘아니다. 여자가 아깝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를 감히 인간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의 얼마 되지 않는 경험으로 볼 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관계가 더 잘 사는 경우도 많더군요.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그대로 주님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어떻게 될 지를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는 ‘이 제자는 죽지 않으리라.’는 말을 서로들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꼭 집어서 말한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판단하고 그래서 자기 뜻이 주님의 뜻인 양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저 사람을 판단하라고 말씀하셨나요? 저 사람을 미워하고 단죄하라고 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인 양 자신 있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모습을 띄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맙시다.



사다리를 찾아라(‘좋은생각’ 중에서)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두 나그네가 있었다. 그들은 오랜 여행을 한 탓에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다. 길을 걷다 어느 마을에 도착하자 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잔뜩 허기진 그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높은 천장에 과일이 담긴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도 과일에 닿지 않았다.

한 남자가 말했다.

“저 과일을 먹고는 싶은데,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서 내릴 수가 없군.”

그러고는 화를 내면서 다른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때 다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난 저것을 꼭 먹고야 말겠네. 아무리 높이 매달려 있다 해도 틀림없이 누군가가 저기에다 걸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라고 해서 저기를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남자는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찾았다. 드디어 헛간에서 사다리를 발견하자 부엌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마침내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 먹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많아도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사람이 해내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나만의 사다리를 찾아 그것을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듯이 쉬지 않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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