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토)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독서 사무엘 하 7, 4 - 5b. 12 - 14a.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른 다윗왕에게 약속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울왕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척되어 하느님의 뜻을 어긴 군주가 되었습니다. 반면 다윗왕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른 왕이었습니다. 다윗왕이 하느님의 뜻에 충실했던 상급으로 다윗의 왕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을 듣지요. 사실, 다윗이 하느님께 이런 상급을 받기위해 순종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 댓가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렸기에 더 귀한 것을 주시고자 하지 않았을까요? 사순시기는 우리가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보며 그안에 조용히 머무는 시기였습니다.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이 시기, 가장 많은 반성의 제목이라면.. 아마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뜻대로, 내 생각과 잣대로 움직이려 했던 우리의 오만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왕이 아무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를 하느님에 의해서 움직이는 꼭두각시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더해져 그 가치가 수천, 수만 배로 뛰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성주간입니다. 그동안 사순시기 하느님의 말씀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성주간에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느님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복음 마태오 1, 16. 18 -21. 24a 요셉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은 5월 1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순시기에 기념하게 되는 요셉 성인의 축일은 ‘동정 마리아의 배필’로서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굳이 예수님의 ‘양부’라는 이름으로 그분을 부르지만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실 수 있게 선택된 또 한명의 어버이인 요셉의 가치는 양부가 아닌 실제 아버지의 역할을 훌륭히 하신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여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과 그 태중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의 아들의 생명 모두를 손에 쥐고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인간적인 수고와 손해를 감수하며 그들을 지켜낸 아버지의 참된 가치를 실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요셉을 중심인물로 드러내 줍니다. 아직 예수님은 성모님의 뱃속에 있고 복음은 성령으로 인해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짧은 이야기만을 배경으로 들려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의 이야기가 아닌 이 상황을 요셉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했는지를 알려줍니다. 현실은 끔찍하게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죠.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때였기에 이 일을 전해듣고 그는 당장 마리아를 고발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복음이 너무 덤덤하게 전해주는 요셉의 성품은 그가 그 성품대로였다면 분명 신고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움직입니다. 그는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지만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요셉의 행동은 사랑의 이중계명 중 이웃 사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런 부모 사이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적어도 이 부모만큼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내신 첫 사람의 사랑스런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부모, 그 속에 자리하신 예수님을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로 이 탄생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말씀에 가장 충실히 따르셨던 우리 주 예수님. 오늘은 예수님의 양부이신 성요셉 대축일입니다. 요셉 성인을 떠올릴 때마다 인간적인 고뇌, 만약 나라면 어찌했을까? 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과연 나라면 세상의 편견과 이목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성모님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 살아가다보면 저희의 머리, 저희의 능력, 저희의 힘과 권위가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믿으며 마치 호가호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나이다. 이런 모습을 보실 때마다 주님, 얼마나 안타까우신지요? 저희에게 사랑의 이중계명을 알려주신 예수님. 저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여 성 요셉의 모범을 따라 살도록 이끌어주소서. 저희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의 능력임을 깨닫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남은 사순시기, 그리고 내일부터 맞이하게되는 성주간에는 저희가 스스로를 더욱 잘 헤아리고 더불어 하느님의 뜻을 잘 따르는 백성이 되도록 저희에게 큰 깨달음을 주소서. 아멘.
|
'가톨릭- > 가톨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십자가의 길 (0) | 2008.03.16 |
---|---|
[스크랩] 매일의 십자가 어떻게 맞을 것인가? l 허성 신부님 (0) | 2008.03.16 |
[스크랩] † 손에 돌을 쥔 채로 가르침을 받다. † / 박상대 신부님 (0) | 2008.03.14 |
[스크랩] 매 순간 감사함으로 기쁨을 누리십시오 (0) | 2008.03.14 |
[스크랩] 3월 13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조롱과 모욕의 돌팔매 사이를 뚫고>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0) | 2008.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