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년 전 저는 본당 교우 문상을 가기 위해
저녁 늦게 원장 수녀님을 포함하여 사목위원
9명과 함께 경북 예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한 우리는 연도를 드리고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아침 출근을 위해 바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새벽 6시가 좀 넘었을까 동이 터 왔고
승합차에 탄 일행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난간을 들이받고 그대로 20m 낭떠러지로 굴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노랫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아침 해가 따갑게 비치고 있었고, 싱그러운 풀 냄새와
상쾌한 공기가 제 주위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고,
같이 있던 분들은 한 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일행 중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살아 있는 3명도 한 분은 바로 다리를 절단하였고,
수녀님은 중태라 2주를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사색이 다 되어 병원 응급실로 뛰어 들어오는 아내를 보고
고마움과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얼마나 걱정하면서 두 시간 넘게 이곳까지 달려왔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듯 아팠습니다.
수술실로 가면서 아내가 제 한쪽 다리를 자라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을 때, 다리를 잘라야 살 수 있다면
주님께 맡기자고 태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눈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양쪽 다리 모두, 뼈가 으스러지고 셀 수도 없이 조각이 나서
빼가 밖으로 뛰어나오기까지 하였지만,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마치고 다음 날 새벽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잘라야 될 것 같다는 다리는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핀과 쇠로 다리를 관통하여 이어진,
무거운 가시관처럼 생긴 철관이 두 다리를 꼼짝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마취가 풀리지 극심한 고통과 추위가 밀려 왔습니다.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제 머리와 팔과 발을 마구 내려치는 것 같았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내가 중환자실로 딸과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
얼굴과 머리가 터지고 부어서 한쪽 눈으로밖에 볼 수 없었지만
살아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모릅니다.
현재 저는 사고 후 지금까지 큰 수술만 11번을 받은
지체 부자유 4급 장애자입니다.
하지만 서운하거나 남에게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충격으로 머리에 이상이 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처음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고,
실명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숨을 쉬며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이 모두가 주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상처 부위가 당겨 걷는 것이 힘들고
어깨와 팔이 저리고 아프지만, 주님은 참고 견디며
인내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당 신자들이 저를 위해 아침저녁으로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기도를 바쳤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되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3시면 일어나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정성은 모든 아픔을 참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매일 올림픽 공원을 한 바퀴씩 돌고 있는데
제가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최대의 걸음은 약 7,000보입니다.
그 이상 걷게 되면 수술 부위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께 갈 때까지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좋은 길을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걸을 수 있는 한 발 한 발이
주님을 위한 값진 걸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일 시간을 내어 침묵 속에 조용히 귀 기울여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들어보고,
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나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으며,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저는 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속적인 건강 보험이나 연금 보험을 떠올리시겠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보험입니다.
여러분은 건강과 위험에 대비하여 많은 보험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월급에서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를 빼고
제일 보장성이 좋은 보험으로 들으셨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 하늘나라를 위해서는
얼마짜리 보험을 들어놓았습니까?
하루에 얼마만한 시간을 주님께 기도드리고,
얼마만큼 주님과 같이 지내십니까?
여러분의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봉사는 바로 하늘나라에 보험을
들어놓고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인으로서 가장 뿌듯한 마음이며,
하느님께 선택받은 가장 큰 은총의 선물일 것입니다.
꾸르실료 서울대교구 교수부장
서왕석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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