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님의 열두 번째 편지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신부님께서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셨을 때 유럽 신자들에게 감동이 되거나 표양이 될만한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이 있으면 적어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건들을 수집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필요한 증인이 없어서 확증된 것을 많이 수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 사람에 대해서만 신부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839년에 조선 교회 전체를 휩쓴 기해박해 때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 순교자의 이름은 최해성 요한입니다. 그는 충청남도에서 신자 부모로부터 출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이웃을 사랑하므로 모든 이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첫 번 박해 때 그의 조부가 귀양을 가게 되어 온 집안이 그 조부를 따라서 귀양소까지 갔습니다. 그곳 고을에서 요한이 장성하였는데, 외교인들 한가운데 살면서는 천주교를 합당하게 실천할 수가 없어서 산속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작은 교우촌을 형성한 다음, 모든 이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착한 표양으로 모든 이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는 극도로 비참한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항구한 인내심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 가난 중에서도 자기 형편이 허락하는 데로
애긍 시사와 자선사업 등을 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모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뛰어난 열성을 다하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비신자들을 권면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기 마을에 선교사 신부님이 오셔서 성사의 은총을 받을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열심에 불탔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이 모든 덕행에 감동한 선교사 신부님께서는
그를 그 마을 회장으로 선임하셨습니다.
그는 견진 성사를 받은 후
성령 칠은의 특은을 충만히 받은 증표가 나타났습니다.
주님을 위한 순교로써,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희생의 제물로
하느님께 바칠 의욕이 나날이 커졌습니다.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가 날로 더욱 악랄하게 되자
요한은 부모와 가족들을 좀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교회 서적들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집으로 가던 중 포졸들과 마주쳤습니다.
포졸들이 요한을 신자인 줄 알아보고 체포하여
그에게 이웃 신자들을 고발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득이 없자 그를 관가로 끌고 갔습니다.
그는 포졸들에게 얼마나 매를 맞아 기진맥진해졌습니다.
그는 며칠 후 다시 끌려나와 문초를 받았습니다.
관장이
“네가 천주를 배반하면 나라의 착한 백성의 되겠고
너와 모든 재산을 되돌려줄 것이며
상금까지도 보태줄 것이다.” 라고 구슬렸습니다.
요한은
“저는 관정께서 온 고을을 다 주신다고 말씀하셔도
하느님을 결단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편태를 자그마치 백대 이상이나 맞고
감옥에 다시 갇혔습니다.
그 후 다시 재판관이 호출하여
네가 정녕 죽기를 바라느냐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요한은 “저도 다른 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위하여 죽기를 사양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재판관이 크게 분노하여 곤장과 편태의
가공할 만한 형벌을 명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너의 종교를 위해 죽겠다는 말이 참말이라면
네가 죽을 때 까지 치도록 하마” 하며
마구 태형을 가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한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드러났으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붙은 그의 영혼은
오히려 기쁨으로 용약하였습니다.
그는 지겹게도 스물 한 차례나 문초를 당하였습니다.
얼마나 모질게 고문을 당하였는지
살과 가죽이 헤어지고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문초 중에 당한 형벌 외에도 포졸들과 악당들에게
온갖 폭행을 다 당하였습니다.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천국으로 개선하는 마당으로
내려갈 날이 밝아 왔을 때 그는 기쁨의 표시로
자기와 옥사쟁이들에게 작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광스럽게 최후의 형장으로 끌려 나갈 때에
그동안 욕설을 퍼붓고 매질을 하던 포졸들과 백성들이
그를 뒤쫓아 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와 작별하였습니다.
저는 며칠 후 여기서 7백리 떨어진
새 교우촌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이 교우촌은 귀양간 어떤 신자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려 최근에 교우촌을 형성한 곳입니다.
그 신자가 사람을 보내어 선교사 사제를 모셔 오도록 청한 것입니다.
제가 이 교우촌을 방문하고 나서
혹시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다음 기회에
신부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의 또 다른 분부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에게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전에 아쉬워서 청했던 것과 같은 것들을 다시 청합니다.
아쉬운 것 투성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청해야 할 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내만 주시면 저에게는 다 필요하고 소용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저와 저의 가련한 조선 신자들을
신부님의 사랑이 넘치는 기도에 다시 의탁합니다.
공경하올 사부님께 지극히 미약한 종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신부님께서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셨을 때 유럽 신자들에게 감동이 되거나 표양이 될만한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이 있으면 적어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건들을 수집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필요한 증인이 없어서 확증된 것을 많이 수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 사람에 대해서만 신부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839년에 조선 교회 전체를 휩쓴 기해박해 때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 순교자의 이름은 최해성 요한입니다. 그는 충청남도에서 신자 부모로부터 출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이웃을 사랑하므로 모든 이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첫 번 박해 때 그의 조부가 귀양을 가게 되어 온 집안이 그 조부를 따라서 귀양소까지 갔습니다. 그곳 고을에서 요한이 장성하였는데, 외교인들 한가운데 살면서는 천주교를 합당하게 실천할 수가 없어서 산속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작은 교우촌을 형성한 다음, 모든 이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착한 표양으로 모든 이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는 극도로 비참한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항구한 인내심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 가난 중에서도 자기 형편이 허락하는 데로
애긍 시사와 자선사업 등을 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모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뛰어난 열성을 다하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비신자들을 권면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기 마을에 선교사 신부님이 오셔서 성사의 은총을 받을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열심에 불탔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이 모든 덕행에 감동한 선교사 신부님께서는
그를 그 마을 회장으로 선임하셨습니다.
그는 견진 성사를 받은 후
성령 칠은의 특은을 충만히 받은 증표가 나타났습니다.
주님을 위한 순교로써,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희생의 제물로
하느님께 바칠 의욕이 나날이 커졌습니다.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가 날로 더욱 악랄하게 되자
요한은 부모와 가족들을 좀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교회 서적들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집으로 가던 중 포졸들과 마주쳤습니다.
포졸들이 요한을 신자인 줄 알아보고 체포하여
그에게 이웃 신자들을 고발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득이 없자 그를 관가로 끌고 갔습니다.
그는 포졸들에게 얼마나 매를 맞아 기진맥진해졌습니다.
그는 며칠 후 다시 끌려나와 문초를 받았습니다.
관장이
“네가 천주를 배반하면 나라의 착한 백성의 되겠고
너와 모든 재산을 되돌려줄 것이며
상금까지도 보태줄 것이다.” 라고 구슬렸습니다.
요한은
“저는 관정께서 온 고을을 다 주신다고 말씀하셔도
하느님을 결단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편태를 자그마치 백대 이상이나 맞고
감옥에 다시 갇혔습니다.
그 후 다시 재판관이 호출하여
네가 정녕 죽기를 바라느냐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요한은 “저도 다른 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위하여 죽기를 사양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재판관이 크게 분노하여 곤장과 편태의
가공할 만한 형벌을 명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너의 종교를 위해 죽겠다는 말이 참말이라면
네가 죽을 때 까지 치도록 하마” 하며
마구 태형을 가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한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드러났으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붙은 그의 영혼은
오히려 기쁨으로 용약하였습니다.
그는 지겹게도 스물 한 차례나 문초를 당하였습니다.
얼마나 모질게 고문을 당하였는지
살과 가죽이 헤어지고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문초 중에 당한 형벌 외에도 포졸들과 악당들에게
온갖 폭행을 다 당하였습니다.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천국으로 개선하는 마당으로
내려갈 날이 밝아 왔을 때 그는 기쁨의 표시로
자기와 옥사쟁이들에게 작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광스럽게 최후의 형장으로 끌려 나갈 때에
그동안 욕설을 퍼붓고 매질을 하던 포졸들과 백성들이
그를 뒤쫓아 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와 작별하였습니다.
저는 며칠 후 여기서 7백리 떨어진
새 교우촌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이 교우촌은 귀양간 어떤 신자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려 최근에 교우촌을 형성한 곳입니다.
그 신자가 사람을 보내어 선교사 사제를 모셔 오도록 청한 것입니다.
제가 이 교우촌을 방문하고 나서
혹시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다음 기회에
신부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의 또 다른 분부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에게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전에 아쉬워서 청했던 것과 같은 것들을 다시 청합니다.
아쉬운 것 투성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청해야 할 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내만 주시면 저에게는 다 필요하고 소용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저와 저의 가련한 조선 신자들을
신부님의 사랑이 넘치는 기도에 다시 의탁합니다.
공경하올 사부님께 지극히 미약한 종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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