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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돈보스코의 이상향, 프란치스코 드 살> 1/24 (목) ... [양승국신부님]

도구 Ludovicus 2008. 1. 24. 20:14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마르코 3장 7-12절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돈보스코의 이상향, 프란치스코 드 살>


살레시오 회원으로 살아가면서도 저희 수도회의 주보성인이신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일명: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던 제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앙리 코위아니에 저, 안응렬 역, 돈보스코미디어, 2001)를 서고에서 꺼내들었습니다.


책을 펴드는 순간,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의 분량에 기가 많이 꺾였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돈보스코 성인께서 왜 그리도 이 성인을 존경했었고,

또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의 주보성인으로까지 모셨는가?’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읽던 저는 무엇보다도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생애 각 단계마다 널려있었던

숱한 걸림돌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 좌절과 낙담의 순간에도 꾸준히 희망했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의 낙천성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낙천성은 돈보스코에 이르러 예방교육의 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의 온유와 겸손, 성공적인 사도직,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낙천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비록 고통스럽고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하느님의 도움으로 잘 되어 나가리라고 믿는

그의 낙천성은 후에 돈보스코의 생애 안에 철저히 재현됩니다.


1593년, 26세 되던 해 프란치스코 드 살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네시의 사제로 서품됩니다.

안네시의 수석사제로 열심히 활동하던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오는데,

샤블레 지방의 선교책임자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샤블레 지방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칼빈 교도들의 땅이 된 곳이었습니다.

샤블레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드 살 앞에 펼쳐진 상황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오래 전 이 지역은 칼빈 교도들에 의해 접수되었고,

전체 인구 3만여 명 가운데 가톨릭 신자 수는 백 명도 채 못 되었습니다.


일부 개신교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 사이에 나타난 그를

우상숭배자나 거짓 예언자로 몰아세우곤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의 첫 번째 강론은

어느 예배당에서 개신교 목사가 일차로 설교를 마치고 나간 뒤에 시작되었는데,

잔뜩 겁을 집어먹어 힐끔 힐끔 뒤를 돌아보던 몇 명의 천주교 신자들뿐이었고,

그 뒤로 호기심에 찬 몇 명의 칼빈교도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모두 합해서 10명도 채 못 되었습니다.


한겨울에도 프란치스코 드 살은 선교를 위해 눈이 내린 시골길을 끝없이 돌아다녔습니다.

동상에 걸린 그의 발은 자주 부어터지곤 했었는데,

그로 인한 통증이 너무 심해 어떤 날은 두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귀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프란치스코 드 살에게서 돈보스코 낙천주의의 뿌리를 읽습니다.

곧 쓰러질 것만 같은 피로감과 사람들의 노골적인 냉대와

급진적인 개신교도들의 위협으로 가득 찬 그 험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그는 희망을 않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샤블레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때 불가능은 없다고 여기며,

언젠가 자신의 노력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알찬 결실을 맺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에게 있어 낙관주의는

곤란한 상황 앞에서 ‘더 이상 어쩔 수 없지’하고 포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윽고 8년 후에는 샤블레 지역 주민 거의 모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더불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인간적인 노력을 다한 뒤,

그 이후의 일에 대해 하느님의 손길에 맡기는 것, 그것이 프란치스코  드 살의 낙관주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철저하게도 낙천적인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철저하게도 희망의 종교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막중한 삶의 십자가 앞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그 이면에 긷든 하느님의 손길을 읽고자 노력합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처럼.


인간이기에 매일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시련이나 좌절, 실패가 지니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고 꾸준히 나아갑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처럼.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하느님의 어린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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