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여행의 새로운 유혹, 크루즈
남해 여행의 새로운 유혹, 크루즈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되어 두 팔 가득 바닷바람을 맞아보고 싶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늘 고민이었던 당신에게 전합니다. 다도해 크루즈 1박2일의 생생한 기록.
남해 여행의 새로운 유혹, 크루즈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되어 두 팔 가득 바닷바람을 맞아보고 싶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늘 고민이었던 당신에게 전합니다. 다도해 크루즈 1박2일의 생생한 기록.
글·사진 박은경 취재협조 하나투어
나는 지금 바다 위에 있다
봄빛 완연한 5월. 국내 최초의 본격 크루즈 여행길에 오르기 위해 전남 광양으로 향했다. 광양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해 승선 카운터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간단한 서류를 적는 것으로 승선 절차를 마쳤다. 승선권과 식권을 받아들고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자 키다리 피에로들이 꽃을 나눠주며 환영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광양비츠호’였다.
부두에 정박 중인 광양비츠호는 생각보다 거대한 몸집을 뽐내고 있었다. 길이 150m, 높이 7층 규모의 1만6000톤급 선박으로, 90여개 객실에 609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크루즈 여행은 처음인데다 국내라는 여건상 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크기가 실로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크루즈 선실은 크게 VIP, 스위트, 디럭스, 패밀리, 스탠다드로 나뉘어 있었다. VIP 선실은 가장 좋은 객실로 트윈 베드에 화장실, 욕조, 응접실 등이 마련돼 있었고, 패밀리룸과 스탠다드룸은 단체여행객을 위한 공간으로 온돌과 침대 가운데 선택이 가능했다.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은 오션뷰 디럭스 싱글룸. VIP룸처럼 화장실이나 욕조가 딸린 방은 아니었지만, 개별적인 공간에서 네모난 창을 통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실내에는 싱글 침대가 있고 텔레비전, 미니 냉장고, 세면대, 수건, 비누, 치약, 샴푸, 슬리퍼, 옷걸이 등 필요한 것은 모두 배치되어 있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입구에서 받은 스케줄표를 꼼꼼히 읽어내려 갔다. 크루즈 여행을 100% 즐기기 위한 일종의 ‘마음의 준비’였다. 스케줄표에는 선내 프로그램 일정과 주의 사항, 시설 등이 소개돼 있었다. 가장 먼저 레스토랑, 대욕장, 화장실, 노래방, 편의점, 레스토랑 등 시설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체크했다. 그리고 오후 5시30분. 스피커를 통해선장의 환영 인사가 흘러나왔다. 배는 항구의 배웅을 받으며 남해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그리고 곧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돌아 여수 향일암 근처에 정박해 하루를 보낼 참이다.
점점 작아지는 터미널과 파노라마처럼 다가오는 바다 풍경에 설레는 마음도 잠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6시부터 8시10분까지. 메인 레스토랑의 좌석수가 150개로 한정된 까닭에 팀당 1시간씩 두 팀으로 나눠 저녁을 먹어야 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50여 가지 음식은 깔끔하면서도 있어야 할 것은 모두 갖춘 모습이었다.
승객들이 바쁘게 접시를 나르는 동안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흥겨운 공연이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여성 타악그룹 ‘드럼캣’의 무대였다. 그녀들은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퍼포먼스를 쏟아냈고,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꼼짝없이 압도됐다.
바다 위 놀이터에 푹 빠지다
공연이 끝나고 허기짐이 가시자 잠시 잊고 있던 프로그램 스케줄표가 불현듯 떠올랐다. 당장 7시부터 조타실(배의 키를 조종하는 장치가 있는 방) 투어와 색소폰 라이브 공연, 선상 골프 교실이 동시에 열린다. 또 1시간 뒤에는 별자리 체험도 잡혀 있다.
우리가 선택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조타실 투어. 30명씩 6팀에 한해 선착순으로 진행되는 조타실 투어는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일명 ‘선장실’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곳에서는 레이더 보는 법과 배의 운항 시스템에 대해 직접 보면서 설명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레이더망에 어김없이 걸려드는 섬이며 선박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조타실에서 나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정 중 단 한 번뿐인 석양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해무가 바다를 자욱하게 덮고 있던 터라 총천연색 노을은 일찌감치 마음에서 접었다. 하지만 해무에 은은하게 스며든 다홍빛 석양은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올라 해지는 하늘을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별자리 체험은 짙은 안개 덕분에 취소됐다. 내심 기대하던 프로그램이어서 그랬는지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대신 노래자랑이 앞당겨 시작됐고, 살짝 가라앉을 뻔한 분위기는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선상 불꽃놀이. 수백발의 폭죽이 하늘을 울리자 컴컴했던 허공이 붉고 푸르게 물든다. 불꽃 아래에는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법한 선상 포장마차가 펼쳐졌다. 바닷바람을 안주 삼아 기울이는 술잔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새벽. 일출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갑판으로 나갔다. 여전히 걷히지 않은 안개에 바닥이 축축했다. 예상대로 해는 쨍하게 떠오르지 않았고, 대신 무지갯빛 풍선이 하늘을 꽉 채웠다. 모두의 소망을 담은 희망 풍선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소망도 날렸겠다, 아침도 먹었겠다, 광양으로 돌아가는 동안 쪽잠이라도 자야 마땅한데 이상하게도 점점 정신이 또렷해진다. 이제야 이곳이 배 안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는데 곧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나 보다. 다도해를 하나라도 더 마음에 담으려고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광양 국제여객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오전 10시. 우리는 그새 정들어버린 광양비츠호와 작별하고 하루 만에 땅을 밟았다.
Tip> 알고 가면 도움되는 알짜배기 정보!
■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하니 현금은 넉넉히!
배에서는 오직 현금결제만 가능하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거나 선상 포장마차에서 일행과의 즐거운 시간을 계획하고 있다면 현금을 두둑하게 준비하라.
■ 애연가라면 담배도 미리 챙기자
배 안에는 편의점도 있고 흡연실도 친절하게 마련돼 있지만, 정작 담배는 판매하지 않는다. 애연가라면 담배를 미리 구입해야 금단현상을 피할 수 있다.
■ 선내 전압은 110V
선내 전압이 110V이므로 전자기기 사용 시 멀티플러그가 반드시 필요하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정 수량의 멀티플러그를 보유하고 있으나 선착순 제공되는 만큼 미리 준비해 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