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4주간목요일(100204.목)
<연중 제4주간 목요일>(2010. 2. 4. 목)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명령’입니다. 권고가 아니라.
그러면 제자들은 의식주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누군가 친절한 사람의 도움을 받았겠지요.
예수님께서 사십일 동안 단식기도를 하셨을 때,
사탄과 천사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사탄은 유혹을 했지만, 천사는 시중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의 의식주는 천사들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천사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떻든 하느님의 천사들이 도와줄 것이니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루카 22,35)
이것은 ‘탁발’이나 ‘구걸’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탁발이나 구걸을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추가 명령은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마라.’였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라는 명령이 바로 그것입니다.
누군가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되,
더 많은 도움을 기대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성직자들, 수도자들, 신부들, 목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가장 기본적으로 실천해야 할 명령이면서
동시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명령이기도 합니다.
먹고사는 일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사제나 수도자로 살 수 있는가?
과연 사제나 수도자가 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 것인가?
활동비 한 푼 없이 사목활동을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신 방식으로 인사발령을 하면 떠날 수 있는가?
저는 바로 그런 상황을 직접 몸으로 겪었습니다.
선교본당과 교도소 사목을 함께 했을 때의 일입니다.
우선, 교도소 사목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재소자들에게서 전혀 헌금을 걷을 수도 없고, 교무금을 받을 수도 없는데
교도소 미사에 필요한 제병, 미사주, 양초 값 같은 전례비를 비롯해서
무슨 행사 한 번 하기 위해 필요한 경비들, 영치금, 영세자 선물비, 간식비...
이런저런 운영비, 활동비, 기타 등등...
정부 당국의 도움은? 제 기억에는 한 번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도적인 도움이나 절차상의 도움들은 받았지만...
교구에서 해마다 일정액을 지원하긴 했지만 그건 필요액의 반도 안 되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후원회원들의 도움으로 채워야 했습니다.
제가 담당했을 때 한쪽 교도소는 이미 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고
다른 쪽 교도소는 제가 후원회를 모집해야만 했습니다.
결과만 말하면 천사들이 많아서 돈 걱정 안 하고 교도소 사목을 했습니다.
선교본당이라는 제도는 교구 지원이 전혀 없는 자립 본당의 개념입니다.
밥을 먹든 죽을 먹든 알아서 하라는 것이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의 그 정신대로 살아보라는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시의 잘 사는 사람들 동네에 선교본당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부자는 하나도 없는 아주 가난한 시골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시골의 가난한 선교본당에서 십일 년을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딱 한 번, 대수술을 앞둔 환자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언론사에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긴 있지만
본당 운영을 위해서는 도와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난했습니다. 다른 신부들보다 적은 돈으로 살았으니.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진짜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도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도와준 천사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님 말씀은 몽땅 다 진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진복팔단의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씀도
복잡하게 해석할 것 없이 글자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저는 선교본당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면 뭐하냐? 건강만 잃었지 않느냐? 선교본당은 다시는 하지 마라.”
저는 제가 선교본당 때문에 건강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평소에 운동을 안 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건강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으로 폐초를 재생해서 예쁜 컵초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그때 초의 미세물질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여간에 하느님의 사업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합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일이라면 안 하고 미루면 됩니다.
저는 그것을 하느님께서 뒤로 미루라고 지시하시는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꼭 해야 할 일이고, 시간적으로도 급한 일이라면,
정말 돈과 상관없이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돈 걱정부터 하는 신부가 있다면... 저는 그 신부가 더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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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은 성직자들,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물론 일반 신자들이 돈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은 곧 능력이고 신분이고 지위라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깨닫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돈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전에 강론에서 한 번 한 이야기이지만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어떤 재소자가 저에게 따지듯이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대학교를 두 개나 다녔으니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란 것 아니냐?
우리는 정말로 가진 것이 없어서 이런 처지가 되었다.
우리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저는 모든 재소자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은 극빈자 가정이었다. 동사무소에서 주는 보리쌀로 연명했다.
집에 돈이 많아서 대학교를 두 개나 다닌 것은 아니다.”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정말로 돈이 아니라 믿음으로 견뎌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마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25-34)
예수님 말씀을 몸으로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부자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만일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면
이 나라는 그냥 난장판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부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나라가 위험해집니다.
그래도 희망 속에서 참고 견디는데 정치인들이 그 희망을 꺾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고 외양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가난하셨던 분입니다.
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가난해지라는 명령은
마음으로만 가난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난해지라는 명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할 때 마음으로만 가난하면 된다고 합니다.
마음이 물질에서 떠나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몸은 여전히 부자로 남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성경을 왜곡하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일입니다.
제가 새신부였을 때 어떤 교구의 평협회장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교구는 큰일이다.
새신부님들이 부임할 때 보면 승용차와 골프채는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다.”
선물로 받았든지, 자기 능력으로 장만했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새신부가 서민의 모습으로 살 생각이 없는 채로 사제 생활을 시작한다면
그 미래가 참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 승용차와 골프채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마는...
이제 사제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면 신부들보다 신자들에게서 더 많은 반론이 들어옵니다.
너무 일방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고,
신자들에게서 ‘좀 이상한 신부다.’ 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묻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일방적인 잣대입니까?
그리고 제가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이상한 신부로 보입니까?
예수님 말씀이 진리라고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비정상으로 보인다고 해도,
저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살겠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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