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4주일(100131)
<연중 제4주일>(2010. 1. 31.)
<나자렛 사람들을 위한 변명>
예수님이 고향 나자렛에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시는데,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메시아라는 본 모습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 부분을 해석할 때,
대개는 나자렛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적합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만 보는 편견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주일 강론도 거의 대부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편견과 고정관념이 나자렛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만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에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 족보에 의하면 요셉은 다윗 왕실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법적으로 요셉의 아들이니 예수님도 다윗 왕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은 요셉을 왕실의 후손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 사실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만 생각한 것은
그 전에 요셉을 가난한 목수로만 생각했음을 나타냅니다.
사실 나자렛이라는 마을 자체가 편견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자렛은 구약 성경에서 한 번도 중요하게 언급된 적이 없는 마을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또 갈릴래아 지역에 대한 편견도 있습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요한 7,41)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이 어쩌다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어떻든 예수님 이전에 요셉과 마리아와 그들의 부모도 모두 편견의 희생자이고,
나자렛 마을과 갈릴래아 지역 전체가 편견의 희생자였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들은 그저 시골의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자기비하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갈릴래아 지역의 주민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믿음 없고, 혈통도 보잘것없는 순 쌍것들.’
유다 지역 사람들이 갈릴래아 사람들을 그렇게 멸시했지만
갈릴래아 지역 사람들도 스스로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누구 탓입니까?
그것은 성경 좀 읽었다는 사람들의 탓이 제일 큽니다.
사제들, 율법학자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세뇌를 하듯이 사람들 머릿속에 그런 편견을 심어놓았습니다.
또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갈릴래아 지역을 차별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편견을 가지고 대했다는 이유로
‘나자렛 사람들만’ 욕을 먹는 것은 부당합니다.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라는 반응을 보일 때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향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성경의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하시는 말씀은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나자렛 사람들만 탓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나자렛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예수님께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라는 예수님 말씀의 ‘고향’은
나자렛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또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
나자렛 사람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나자렛이 아니라 ‘너희 유대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에 화가 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를 들어서 하신 말씀에는
‘너희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것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라는 속담은
‘네가 메시아라면 이스라엘 민족부터 구원해보아라.’ 라는 뜻입니다.
‘카파르나움에서 했던 일을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라는 말은
‘기적을 행하면 우리가 믿겠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마을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 말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고 ‘나자렛 사람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는 것.
그들은 너무 세뇌 당해서 마음과 눈이 가려져 있었다는 것.
예수님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세뇌시키고 그들의 마음과 눈을 가린 것은 바로
‘우리 나자렛에서는 예언자가 나올 리가 없다.’ 라는 고정관념입니다.
그렇게 고정관념을 심어놓은 자들,
갈릴래아 지역 주민들과 나자렛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가린 자들,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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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자렛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편견을 버리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뻔한 말이니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라는 생각,
‘나는 천당에 갈 수 없다.’ 라는 생각,
‘나는 성인(聖人)이 될 수 없다.’ 라는 생각.... 이게 다 편견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인 성녀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천당에 갈 수 있고, 가야 합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 ‘나 같은 것’을 성인(聖人)으로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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