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성티모테오와성티토주교기념일(100126.화)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2010. 1. 26. 화)
<우리 아버지의 일>
성당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인으로 오는 사람과 손님으로 오는 사람.
(성당을 ‘내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남의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
물론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서 그냥 구경하러 온 손님들이 있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당은 남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성당은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집’이니까 ‘우리 집’입니다.
얼마 전 강론에서 ‘성당의 주인은 성직자가 아니라 신자’ 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성당의 주인은 성직자라고 착각하는 신부들이 있어서
성당의 주인은 성직자가 아니라 신자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성직자란 아버지의 자녀들 중에서 따로 직무를 맡은 사람일 뿐입니다.)
만일에 신자가 성당의 주인을 성직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성직자들만의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손님으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세례를 받는 순간 우리는 모두 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집은 곧 하느님의 자녀들의 집입니다.
그러니 신자는 손님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르면서도
‘우리 아버지의 집’을 ‘남의 집’으로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같은 논리로 ‘우리 아버지의 일은’ 곧 ‘우리 집의 일’이고,
‘우리 집의 일’은 곧 ‘우리의 일’이 됩니다.
1월 26일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수확’은 ‘아버지의 일’입니다.
‘일꾼’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은 일차적으로는 ‘우리’ 모두입니다.
그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돕는 진정한 자녀들이 적다.’ 라는 말씀이 됩니다.
이 말씀을 성소자가 적다, 또는 사제가 적다,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너무 좁은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됩니다.
아버지의 일, 교회의 일은 성직자와 수도자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자녀들 모두의 일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다 아버지의 자녀이니까
신자라면 당연히 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당연히 교회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책이 다르고 직무가 다를 수는 있습니다.
무엇을 맡아서 어떤 일을 하든
교회의 일은 남의 집 일이 아니라 우리 집의 일입니다.
옛날에 어떤 성당에서
성당 청소를 할 사람을 월급을 주고 고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관리장 같은 직원이 아니라 청소만 하는 사람을 고용한 것.)
신자들이 얼마나 성당 청소를 안 하면 그랬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얼마나 돈이 많으면 돈으로 다 해결하려고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 성당은 신심 활동이나 봉사 활동에서 청소는 제외시켰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반 가정에서 식구들이 바쁘면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처럼
그 성당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도우미를 고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주인 의식이 참으로 희박한 성당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성당 청소를 돈으로 고용한 사람에게 맡길 정도라면
다른 봉사활동들은 어떻게 하나, 그것도 돈으로 사람 사서 하려나...
성당 청소는 전혀 봉사활동으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구나...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이
‘아버지 하느님의 일은 많은데 그 일을 할 자녀들이 적다.’ 라는 뜻이라면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아버지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자녀들의 수가 많아지도록 기도해라.’ 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은 ‘선교활동에 적극 나서라.’ 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선교활동은 선교사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면 당연히 모두 다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속에 물들지 마라.’ 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라는 말씀은
세속의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의 방식으로 해야 잘됩니다.
돈 계산부터 하는 세속의 방식으로는 하느님의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진리라는 것은 이천 년의 교회 역사가 증명합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세속의 사적인 인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아버지의 일이 더 급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그곳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하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것을 예의라고 생각했다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평화를 빈다고 말하라.’ 라는 것은
하느님의 모든 은총을 나타내는 ‘평화’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은총도 받아들이겠지만
하느님을 거부한다면 은총도 거부하거나 은총을 받을 자격을 잃을 것입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은
더 좋은 대우를 하는 곳으로 옮겨 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는 대로 받아먹어라, 라는 분부입니다.
(더 좋은 성당, 덜 좋은 성당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제에게나 신자에게나 모든 성당은 다 우리의 성당입니다.)
1월 26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분부인데
이 분부가 사도들이나 선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말고, 세속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
모든 신앙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도 모든 신앙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일은, 자녀들인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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