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연중제1주간월요일(100111.월)

도구 Ludovicus 2010. 1. 11. 09:29

<연중 제1주간 월요일>(2010. 1. 11. 월)

 

<나를 따라오너라.>

 

1월 11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복음 말씀을 보면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이 첫 제자로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공관복음만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처음 보자마자 바로 부르신 것처럼 되어 있고,

제자들도 부르심을 받자마자 따라나선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 중에 일부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되어 있고,

세례자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안드레아와 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지냅니다.

(또 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 다음에 안드레아는 자기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요한은 자기 형 야고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제자 네 명이 예수님을 만난 때와

제자가 되어서 따라나선 때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시일의 간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부르심과 응답만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제자가 되기를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이

어느 정도나 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심사숙고’를 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한 번 결심이 서자 그들의 행동은 과감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결심했다면 더 이상 뒤돌아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버리는 것.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첫 제자들은 모두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직업을 감안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낚는다는 말은 무엇일까?

요즘의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좀 안 좋은 어감으로 들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성경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것은 물에서 꺼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죽음에서 건져내서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물에서 꺼내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노아의 홍수 때의 물이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 앞을 가로막았던 바다의 물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물입니다.

그런 물에서 꺼내는 것이니 그것은 곧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씀은 동시에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겠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 청년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전달해주는 사명을 맡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소’입니다.

 

옛날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어떤 본당의 보좌신부였던 저는

교리교사 중의 한 대학생을 눈여겨보았습니다.

모든 점에서 사제로 살면 딱 맞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그를 불러내서 긴 시간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신학교에 지원하지 않겠느냐? 라고.

그는 제 말을 끝까지 듣더니 관심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좀 아쉬웠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 그 본당을 떠났고,

몇 년 동안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몇 년 뒤에 보니 그는 신학생이 되어 있었고,

지금은 신부가 되어서 훌륭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교구에서는 서품식을 앞두고 후보자들이 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고등학생 때 저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신학교에 가게 되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부제가 있습니다.

 

무슨 영향을 어떻게 주었는지 저는 기억을 못하고 있지만,

하여간에 며칠 뒤에 있을 서품식 때

새 사제로 탄생하는 그의 모습은 저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저 자신도 선배 신부님들의 영향을 받아서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계시지만,

다른 분은 지금도 제 삶에 큰 영향을 주고 계십니다.

 

그렇게 사제직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앞장서는 것 같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 뒤를 따라간 것처럼

신부들은 예수님 뒤를 따르기도 하지만 다른 신부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사제들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의 신앙을 보면서 뒤따라가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신앙을 끌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어야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얼마나 살아 있는지를 반성합니다.

제 몸이야 아픈 날이 더 많은, 그저 그런 상태가 되었지만,

제 마음, 영혼, 정신만은 제대로 살아 있기를...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저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

 

그것이 오늘 신부로 살고 있는 저의 최고의 소망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 Fr.송영진 모세
글쓴이 : Fr 송영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