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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탄팔일축제내제5일(091229.화)

도구 Ludovicus 2009. 12. 29. 08:59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2009. 12. 29. 화)

 

<제1독서 : 요한1서 2,3-11>

 

독서 말씀에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계명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계명 -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9절)

 

아무리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여도 이웃을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10절)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죄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미움이라는 감정 자체는 죄라고 할 수 없지만,

그 미움 때문에 어떤 사람을 저주하거나,

그 사람이 불행해지기를 바란다면,

또는 실제로 그 사람을 해친다면,

미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했든, 나의 행동은 죄가 됩니다.

미움이 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미움을 누르고 참을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미움이 있는데도 꾹 참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일은 위선이나 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미움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죄의식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미워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움 자체 때문에 죄의식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어떻든 마음속의 미움은 일단 접어두고,

상대방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이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입니다.

미움 자체도 괴로운 일인데 그 미움 때문에 죄까지 짓는다면

그건 이중 삼중으로 손해 보는 일입니다.

 

그런 노력을 하다보면, 그렇게 하기 힘든 용서도 할 수 있게 되고,

언젠가는 미움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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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 2,22-35>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난 후에

마리아와 요셉이 정결 예식을 하러 성전에 갔다가 예언자 시메온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에는

예수님이 태어난 직후에 헤로데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그것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을 간 것으로 되어있는데,

피난은 언제 갔는지, 성전에는 언제 갔는지,

정결 예식을 하고 나서 피난을 갔는지, 피난에서 돌아와서 성전에 갔는지,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피난 가기에도 바빴을 텐데... 정결 예식을 하러 성전에 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물로 바친 것은 비둘기 한 쌍입니다.

그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가난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최소한의 예물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시메온 예언자를 만나는데,

그는 성령의 도움으로 구세주를 알아보고 예언을 합니다.

“아기 예수는 온 세상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어 구원을 가져올 것이다.”

이 예언에 대해 아기 예수의 부모는 감격합니다.

 

그러나 곧 가혹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영혼이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다.”

시메온의 이 예언은 성모 마리아 생애의 일곱 가지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아기들의 돌잔치 때 하는 돌잡이라는 것이 생각납니다.

그 아기의 미래를 점쳐본다고 하는 일이지만 그걸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냥 아기의 미래를 축복하는 풍습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기 앞에 좋은 것만 늘어놓고선 그중에 하나를 집으라고 합니다.

무엇을 집든지 그 아기의 미래는 복 받은 인생이 될 것이라고 좋아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처음 마리아에게 나타났을 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좋은 말만 했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났을 때에도 엘리사벳도 좋은 말만 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와 요셉은

시메온 예언자도 아기 예수님에 대해 좋은 예언만 하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너무 가혹하고 슬픈 예언이었습니다.

마리아로서는 처음 듣는 고통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아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 어머니의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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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서품식 때, 또는 새 사제 첫 미사 때,

축하하고 기뻐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그 새 사제를 기다리고 있는 사제의 삶을 생각할 때

마음이 짠해져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사제가 되는 순간 이미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영광스러운 날이지만, 사실은 고난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신학교 입학이 결정되는 때부터

가족들과 친척들이 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탄절은 사실상 사순절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성탄절이 몹시 슬픈 날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대영광송을 부르면 뭐합니까?

차가운 동굴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눕혀지는 상황인데...

동방박사들이 귀한 선물을 가지고 축하하러 찾아오면 뭐합니까?

그 일 때문에 헤로데에게 살해당할 뻔 했는데...

그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피난살이를 해야 했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신앙생활이란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사실은 십자가의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영세식 날, 모두 다 하얀 옷을 입고,

꽃다발과 선물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잔치를 하고...

겉으로는 축복 받는 날이지만 사실은 고난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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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반대 받는 표징이 된 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적고, 믿지 않는 사람은 많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하느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초대하거나 와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그 당시에 종교적인 구세주를 기다렸던 사람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구세주를 기다렸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메시아(구세주) 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습니다.

아니,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현세적인 행복과 부귀영화만 바라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내세에 대해서 설교하고,

회개하라고 타이르고,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일이 환영받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반대 받는 표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메온의 예언에는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예언도 들어 있습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구세주를 거부하면 구세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됩니다.

 

결국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사람들의 운명이 갈라지게 됩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배반자 유다는 배반자로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배반을 한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제자들은 배반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비판하셨던 사람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인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원래부터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살도록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산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주 열성적인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지만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구세주인가? 그저 옛날의 예언자일 뿐인가? 신화적인 인물인가? 소설 속 주인공인가?

 

시메온의 예언은 우리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너에게 예수라는 분은 어떤 분인가?”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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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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