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천주교회 사회사목 분야 열쇳말은 '공동선 위기'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이뤄지는 재개발 사업과 용산 참사, 다수의 합리적 반론에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 4대강 개발,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계속돼온 비정규직 양산 및 차별, 연간 북측 식량부족분이 84만t(최근 세계식량계획 보고 기준)이나 되는데도 대북지원을 사실상 제한한 정부, 15대 국회 때부터 4회째 이어지는 사형폐지법안 국회 청원 등 우리 사회 공동선 위기가 어디에까지 이르렀는지 그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언 땅에 노랗게 피어나는 민들레와도 같은 희망의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으로 촉발된 생명 나눔은 장기기증문화를 뒤바꾸는 획기적 계기가 됐다.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며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노인사목과 관련해 어르신복지시설도 대폭 늘어났고, 이주민 100만 명 시대를 맞으며 이주민 사목도 한층 활성화됐다. 다사다난했던 2009년 한 해 사회사목 분야를 결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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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30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린 정부의 4대 강 개발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등 참가자들이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
#발전 중심에는 '인간 사랑' 있어야
4대 강 사업은 2009년 한 해를 달군 현안이다. 천주교회는 특히 창조질서보전미사 봉헌과 생태복음화 교육, 캠페인, 만화자료집 발간, 기자회견 등을 통해 4대강 사업 백지화에 힘을 모으고,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정부는 18대 국회에서 4대강 정비계획 예산안을 통과시키려 애를 쓰며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는 지난 10월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정부 4대 강 개발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창조주 하느님 뜻에 따라 개발사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용산 참사'로 압축되는 무분별한 재개발 사업은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지난 1월 성명을 내고 "추운 겨울에 강제철거가 금지된 방침과 상식을 무시한 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 공권력이 오히려 폭도를 진압하듯 특공대를 파견해 마지막 삶의 보루를 무너뜨리고 집 없는 이들의 절규를 짓밟아 버렸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4월 12일 용산참사현장에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 봉헌을 시작으로 용산참사 유가족과 함께해왔다. 성직자들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으며, 주일과 목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오후 7시 참사현장에서 서울 빈민사목위 사제단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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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초 용산참사현장에서 봉헌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200일, 용산참사 해결 촉구를 위한 추모미사'에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촛불을 봉헌하고 있다. |
#'생명 나눔'은 장기기증운동 확산 기반 마련
지난 2월 16일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기증 서약자가 급증, 올 한 해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사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한 신청자는 7일 현재 3만1189명을 기록했다. 이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설립 이후 20년간 등록한 장기기증 서약자 총 3만3000여 명에 맞먹는 수치다.
특히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김 추기경이 남긴 생명 나눔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고자 보건복지가족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등과 함께 '장기기증 범국민 캠페인'을 펼쳤고, 4월 6일 명동성당 들머리에 장기기증 상설 등록센터를 개설했다. 이러한 생명 나눔의 열기는 대구, 광주, 마산, 대전, 청주, 춘천, 군종 등 각 교구로 번져 전국에서 장기기증ㆍ헌혈 릴레이 캠페인이 이어졌다.
주교회의도 가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가톨릭 장기기증 전국 네트워크 설립을 승인, 명실공히 한국 장기기증 운동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 7월부터 노인요양보험제도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교회도 복지 틀 변화에 발맞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런 가운데 인천교구 '천사의 집', 전주교구 신태인본당 하늘향노인복지센터, 청주교구 지현카리타스 노인복지센터 등 전국적으로 부족한 노인 전문요양시설을 위탁 또는 자체 설립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인복지에 나섰다. 아울러 서울대교구는 서울시와 손잡고 내년까지 치매ㆍ중풍 등 노인성 질환 어르신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서울형 노인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를 교구 내 20개 성당에 설치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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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2일 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 김용태 신부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종손 김언중(바실리오)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
#대북 나눔은 '개점휴업' 상태로
남북관계 경색과 함께 대북나눔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 4월 북측 로켓 발사 이후 정부가 북한 방문은 물론 인도적 지원물자 반출 승인마저 제한적으로 허용하거나 유보함으로써 남북 협력 및 교류가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한국 카리타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등 국내 56개 민간단체들로 이뤄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는 지난 6월 기자회견을 갖고, 인도적 대북지원 물자 반출과 함께 방북을 허용할 것을 정부측에 촉구했지만 아직껏 대북지원은 발이 묶여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사도직 활동은 교회에서 한층 활성화됐다. 서울 민족화해위원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서울대교구본부 주관으로 지난 8월부터 5개월간 진행된 '북한이탈주민 농촌 이주 및 생산협동조합 창업교육 지원' 프로그램, 북한이탈주민 어린이 그룹홈 '수원 나르샤' 등이 속속 생겨났다.
지지부진한 대북나눔과 달리 기아와 질병, 대규모 재난으로 고통받은 지구촌 이웃을 위한 나눔 활동은 활발해졌다. 한국 카리타스와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지난 9월 대규모 지진과 태풍, 지진해일(쓰나미) 등 자연재해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이재민 긴급구호에 발 벗고 나섰다. 또 올 한 해 한국 카리타스가 약 17억여 원,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약 15억여 원을 해외 저개발국가에 지원해 국제개발협력사업 및 인도적 구호를 위한 원조 규모 역시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주노동자'에서 '다문화가정'으로
교회는 올해 이주사목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다문화가정이 10만 가구를 넘으면서 이전에는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사목이 주를 이루던 이주사목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크게 강화되는 추세다.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교실과 요리교실, 상담 및 문화 적응 활동들 외에 결혼이주여성들 자조모임, 한국인 남편들의 자조 모임, 아버지학교 사업들을 통해 다문화가정들이 겪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들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대전교구 천안모이세가 5월에 시작한 '꿈이평화'와 광주대교구에서 8월에 시작한 '다문화행복문화 나누기' 같은 사업들은 이주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정서적 자립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쉬는 쉼터 역할을 하는 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이들 여성들이 자녀와 함께 지내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자립형 그룹홈 '마리공동체'를 열었다. 수원교구는 직장을 잃은 남성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인 엠마우스 쉼터를 열었다. 또 대구대교구는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격인 다문화가정다솜학교와 포항 지역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열었고, 대구가톨릭대도 산하에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목 상담 지원 활동들도 꾸준히 이어졌다. 전주교구는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를 위한 무료진료소를 교구 이주사목센터에 열었고, 군산에도 외국인노동자문화센터를 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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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교회의 사무국장 변승식 신부가 지난 10월 초 국회에 사형폐지입법청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
#사형폐지활동과 출소자사목에 중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10월 국회에 사상 네 번째로 사형폐지 입법청원서를 제출, 또 다시 사형폐지를 향한 본격 행보에 들어갔다. 야당 의원 53명만으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교회는 사형폐지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사형폐지 입법청원서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교회 주교단 22명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10만481명이 서명했으며, 특별히 지난해 10월 말 방한해 사형폐지 서명에 함께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레나토 라파엘레 마르티노 추기경의 서명도 첨부됐다.
교정사목도 한결 활기를 띠었다. 대전교구 교정사목부는 지난 2월 교정사목 전담센터 '해밀'을 마련했고,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는 최근 출소자들의 자활 공간과 살해 피해자 가족들 모임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서울 교정사목위원회는 또 출소자 자녀를 위한 장학사업을 올해 처음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6월 발족한 서울 사회교정사목위 기쁨과희망은행의 출소자 대출사업은 올해에도 계속돼 상반기에 13명 하반기에 24명 등 모두 37명에게 5억2000여만 원을 대출해줬다. 내년은 서울 사회교정사목위 창립 40주년이 되는 해여서 교정사목에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오세택 기자 sebastiano@
서영호 기자 amotu@
김민경 기자 so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