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림제3주간화요일(091215.화)
<대림 제3주간 화요일>(2009. 12. 15. 화)
“걸레는 빨아도 걸레일까?”
제가 군대 쫄병 시절 공수훈련을 받을 때,
조교 한 사람이 걸핏하면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수색대원이 공수훈련을 받는다고 특전사가 되겠느냐?’
‘니들은 그냥 육군 보병일 뿐이다.’ 라고 비아냥거리는 말이었습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신분제도라는 것도 없는데,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의 출신을 따지고, 가문을 따지고, 직업을 따지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에 ‘세리와 창녀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당시에 그들은 ‘죄인들’의 대명사였습니다.
만일 오늘날의 우리 교회에 ‘창녀였던’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온다면?
그의 과거가 신자들에게 알려진다면?
과연 맘 편하게 성당에 다닐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또, 만일에 전과자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맘 편하게 성당에 다닐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그냥 조용히 성당에 다니는 것도 어려운데,
신학교나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한데... 인간의 현실을 생각하면... ??? 참으로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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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의 빨래 이야기.
요즘도 그렇겠지만, 제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에
속옷과 양말은 신학생들 스스로 빨아야 했고,
다른 옷은 모두 빨래방 언니들이 세탁을 해주었습니다.
빨랫감은 학년별로 정해진 날에
각자 이름이 새겨진 빨래 주머니에 담아서 복도에 놓아둡니다.
그러면 빨래방 언니들이 그걸 모아서 빨래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생이 낡아서 못 입게 된 팬티를 걸레로 쓰다가
무심코 빨래 주머니에 그걸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다 그 사실을 잊은 채로
다른 겉옷들과 함께 그냥 빨래 주머니를 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빨래는 빨래방 언니들이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리미질까지 해서
일주일쯤 후에 주인에게로 되돌려 보내는데...
그 걸레의 임자였던 신학생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찢어지고 구멍 뚫리고, 누가 보아도 그냥 걸레였던 그 팬티가
얼마나 표백을 했는지 새하얗게 변신해 있었고,
찢어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은 완벽하게 수선되어 있었습니다.
더러웠던 걸레가 훌륭한 팬티로 복원된 것입니다.
놀란 그 신학생이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는 하루 사이에 전체 신학교에 퍼졌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감명 깊었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다. 회개와 용서라는 것이 이것이구나.”
걸레도 잘 빨고, 수선만 잘하면 원상 복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라는 말은 진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는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떻든 복잡한 과거가 있고, 죄 많은 여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성녀입니다.
성모 마리아 다음 위치에 있는 동정녀로 공경을 받는 분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걸레를 훌륭한 옷으로 복원하실 수 있는 분.
회개는 걸레 같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세탁하는 작업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를 원상 복구시키는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세탁기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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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분부에
‘싫습니다.’ 라고 했던 큰아들은 일하러 갔고,
‘가겠습니다.’ 라고 했던 작은 아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 질문에 대답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충격적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이 복음 말씀을 이천 년 전의 유대인들에게만 적용한다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살아 있는 예수님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바꾼다면?
“내가 진실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에게 말한다.
전과자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이렇게 바꾸었다고 저에게 돌을 던지겠다면 기꺼이 그 돌을 맞겠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라고 해서 윤락여성들보다 더 잘난 것 없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로 살다가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갈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아마도...)
전과자와 창녀였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할 때,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들이
비그리스도교 국가들보다 성범죄율이 더 높고, 더 타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건 예수님의 탓이 아닙니다.
신자들의 생활이 ‘믿음 따로, 생활 따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신자들만 천국에 간다는 교리는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선행과 공로를 쌓은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천만에.
살아서 온갖 나쁜 짓 다 하고서,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간다면,
거긴 분명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사이비 천국, 또는 짝퉁 천국이겠지요.
주일날 성당에 가서 거룩한 척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죄를 지어도 되는 날이 아닙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신자라고 별 수 있냐? 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게 ‘신자는 사람 아니냐?’ 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성인 성녀들은 사람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성모님도 성인 성녀들도 분명 사람이었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라는 말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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