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34주간수요일(091125.수)
<연중 제34주간 수요일>(2009. 11. 25. 수)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루카 21,17)
지구상의 종교 중에서 가장 미움을 많이 받은 종교는
바로 그리스도교일 것입니다.
특히 가톨릭교회.
그것은 순교자 수만 보아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많은 순교자가 있는 종교는 또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순교자’ 라고 하면
뭔가 거룩하고 고귀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죽음을 보면 그게 그렇지도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고, 손가락질 당했고,
법을 어긴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미신, 이단, 혹세무민, 사교... 그런 취급을 받았습니다.
순교자들이 고문당하던 장면을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요.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하게 당했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니.
사형 당한 방식 역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방법은 다 동원되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형이고,
화형도 있었고, 맹수의 먹이가 된 경우도 있었고, 기타 등등...
미움과 천대와 멸시와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 순교자들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당한 일이 아니라
가족, 친구, 친지들에게서도 당한 일이었습니다.
---------
왜 그렇게 미움을 받았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 적이 없는데,
특별히 미움 받을 일을 한 것이 없는데,
왜?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속 사람들과 신자들의 삶이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신자가 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 ‘다르다는 것’ 때문에 미워했습니다.
드러나게 종교 박해가 없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따돌림 당합니다.
‘혼자서만 거룩한 척 한다.’
‘혼자서만 깨끗한 척 한다.’
‘혼자서만 신자라고 너무 티를 낸다.‘
‘다른 사람들과 안 어울린다.’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한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하여간에 ‘혼자서만 다르다는 것’ 때문에 미워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관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게 기분 나쁘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내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같잖다.’ 라고 비웃습니다.
--------
신자들은 ‘성도’, 즉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이 말은 거룩하신 하느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느님을 믿고 거룩해진 백성’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거룩하게 되는 때가 신앙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하다.’ 라는 말에는
‘다르다, 구별된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축성’이라는 말에는
세속과 분리한다, 구별시킨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축성되었고,
그래서 세속과 분리되었고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곧 세속과 구별되는 다른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것은 곧 미움을 받는 지름길이 됩니다.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는 순간 미움 받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입니다.
반대로 세속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신부인 내가 신부가 아닌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다른 점이 없다면 생활을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옷을 다르게 입는다고 달라지겠습니까?
내면에서부터 달라지는 것이 진짜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척 하는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깨끗한 척 하는 것은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로만 칼라를 하고 있다고 해서 신부로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까짓 로만 칼라는 돈 몇 푼만 주면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전에 군대 생활할 때 휴가를 얻어서 가게 된 병사들이
청량리 시장에서 온갖 휘장과 마크를 사서 군복에 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자기가 특수부대에 있다고 ‘뻥’치기 위해서입니다.
특수부대 휘장과 마크는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계급장도 그냥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딱한 일이지만,
부대로 복귀할 때에는 그걸 전부 다시 옷에서 떼어내야 합니다.
거짓 계급장과 거짓 휘장을 부착한 채 부대로 복귀했다가는
바로 영창에 가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척 하면서 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서게 되면 본색이 드러납니다.
깨끗한 척 하면서 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서게 되면 얼마나 더러운지 드러납니다.
우리는 거짓이 아니라 진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짜로 세속 사람들과 구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움을 받더라도 진짜로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진짜로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예언이기도 하고, 경고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합니다.
경고 - 세속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하는 삶을 살지 말아라.
약속 -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예뻐하실 것이다, 라는 약속.
---------------
전에 교도소 사목을 하던 시절,
저는 수단을 입은 채로 교도소를 들락거렸습니다.
교도소의 모든 사람들이 저는 안 보고 제 옷만 보았습니다.
교도관, 재소자, 면회객들...
시골본당의 주임신부로 살 때에는
수단을 입은 채로 가정방문을 다녔습니다.
젊은 남자가 검고 긴 옷을 펄럭거리면서 돌아다니면
일단 사람들이 한 번은 바라보긴 하지만
천주교 신부인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지나칩니다.
만일에 수단을 입은 채로 가기에는 너무 어색한 장소라면
아예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나이트클럽 같은 곳.
나이트클럽에 수단을 입은 채로 가서 술을 먹긴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신부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감추어야 한다면
신부로 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어디 성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습니까?
신앙인이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한다면
그건 지금 신앙생활을 아주 잘못 하고 있다는 뜻이 될 뿐입니다.
순교자들을 공경한다는 것은
순교자들처럼 살다가 순교자들처럼 죽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받았던 미움을 우리가 받더라도.
그분들이 겪었던 고통을 우리가 다시 겪더라도.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