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32주간수요일(091111.수)
<연중 제32주간 수요일>(2009. 11. 11. 수)(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루카 17,17-19)
열 명의 나병 환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들 모두가 다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낫게 됩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를 드립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그냥 가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되돌아온 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이야기의 강조점은 무엇일까요?
은총을 받으면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감사’가 이 이야기의 주제일까요?
그건 너무 단순하고 표면적인 해석입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봅니다.
열 명의 환자가 모두 병이 나았습니다.
기적은 열 명 모두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그 기적이 취소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감사를 드린 그 한 사람이 추가로 받은 것은?
감사를 드리지 않고 그냥 간 아홉 명은 받지 못하고,
감사를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만 받은 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몸의 병이 낫는 것은 진짜 기적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진짜 기적은 예수님을 만나서 영혼의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복음서의 다른 이야기들을 보면 그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마태오복음 15장 29절-31절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병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그들은 모두 병이 나았고 신체장애를 고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습니다(마태 14,34-36).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벳자타 연못에서 38년이나 앓던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데,
그 사람은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예수님을 밀고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병이 나았으면서도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성경은 몸의 병과 영혼의 구원은 별개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몸의 병이 낫는 것보다 영혼의 구원이 진짜 기적이라고 가르칩니다.
자, 다시 나병 환자 열 사람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생각하면,
아홉 명은 그냥 가버렸기 때문에
몸은 나았지만 영혼의 구원은 얻지 못했고,
돌아온 한 사람은 몸도 낫고, 영혼 구원도 얻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은총을 받은 이유는? 감사를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은 다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가 구원을 얻은 것은 감사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감사를 드린 것은 자신의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감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진정한 감사로 표현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강조점은 ‘감사’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기적을 체험하고도 감사를 드릴 줄 모르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운전을 하면서 사고를 낸 적은 없지만
사고를 당한 것은 두 번입니다.
그리고 사고가 날 뻔 했던 적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들이 모두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그중에 하나,
군산 교도소 미사를 드리러 가다가 큰 사고를 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전주 군산 간 산업도로는 준공은 했지만 개통은 하지 않아서
자동차들이 모두 다 그 길을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던 때였습니다.
그날 저는 그 도로를 시속 130-140 키로 속도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달리는 승용차 한 대가 제 앞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승용차를 오른쪽으로 추월하려고 했습니다.
그 차를 막 지나치려고 하는데
우회전 신호도 없이 갑자가 그 차가 제 앞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마도 뒤를 살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그대로 그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대형 사고가 났을 것입니다. 제 차는 무겁고 큰 차였으니.
저는 순간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습니다.
그 차를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제가 다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 지점은 오른쪽으로 낭떠러지가 계속 이어지는 구간이었는데,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그 차와 충돌을 피하면서
제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을 각오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뜻밖에도 그 지점에 옆으로 빠지는 샛길이 하나 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낭떠러지로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앞의 승용차도 느닷없이 오른쪽 뒤에서 나타난 차 때문에 너무 놀라서
급정거를 하긴 했지만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수호천사가 제 차를 순간적으로 대신 운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핸들을 틀었다는 것,
낭떠러지로 날아가지 않고 샛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는 것.
그때 저는 운전하면서 성경 낭독 테이프를 듣고 있었고,
또 어디 놀러가는 길이 아니라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저를 한 번 봐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교도소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재소자들이 저를 보더니 놀라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과속 운전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동시에 회개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세상은 하느님의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날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도 기적이고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도 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무 느낌도 없이 하루를 살고
어떤 사람은 날마다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도
정말 기적적으로 중병이 낫는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만 생각하고 혼자 기뻐하다 말고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건 모두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기적을 그저 신기한 일, 운 좋은 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다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니까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병자 열 사람 중에 아홉 명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을 좋아하기만 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한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을 깨달았고, 믿었고,
그래서 되돌아와서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믿음.
믿음이 없어도 그런대로 인생을 살긴 삽니다. 그러나 기적은 없습니다.
믿음만이 기적을 기적으로 만나게 합니다.
그때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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