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31주간화요일(091103.화)
<연중 제31주간 화요일>(2009. 11. 3. 화)
(루카복음 14장 15절-24절)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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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고 예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복음 말씀의 '잔치'는 하늘나라의 잔치입니다.
그 잔치에 초대를 한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초대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늘나라(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그것과 이 세상 것들은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차원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 것들 때문에 하늘의 것을 외면합니다.
유한하고 허무한 것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무시합니다.
가치 판단을 못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 종교와 신앙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세상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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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잔치에 초대를 받았으면서도 참석은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정말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를 쉬면 하루를 굶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에게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고 나무라지 못합니다.
반대로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일을 하루 쉬고 주일을 지켜도 굶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말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재지변, 재난, 전쟁, 질병 등등...
하느님 잔치에 참석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못하는 것'을 탓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융통성 없는 하느님은 아닙니다.
교회도 그런 융통성은 있어야 합니다.
문득 생각난 것인데...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고 싶은데도 세례를 받을 기회를 놓치고
전쟁터에 나갔을 때의 경우,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하고 죽게 되었다고 할 때,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싶어 한다면???
그런데 주변에 세례를 줄 신자가 하나도 없다면???
제가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여기에 적으면,
신자가 아니라도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그 사람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 라고.
세례는 하느님과 세례 받는 사람과의 일이고
세례를 주는 사람은 그 일을 대행할 뿐이니까...
그런 부득이한 비상 상황에서는 에외적인 일도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행히 안 죽고 살아난다면 나중에 보례를 받아야겠지만...)
하느님은 그 정도로 융통성이 많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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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가 사제로 살면서 수없이 겪은 일인데,
많은 신자들이 못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이 부족해서 안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 지금의 신앙인들 모습입니다.
밭을 샀다, 겨릿소를 샀다, 장가를 들었다...
일 때문에, 학교 때문에, 친목 모임 때문에, 무슨 행사 때문에
신앙생활은 잠깐 뒤로 미루는 지금의 신자들 모습 그대로입니다.
정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딱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대로 먹고 살만하고, 여가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의 경우,
과연 신앙생활이 자기 인생의 첫 자리에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명색이 신자라면...
이것은 주일을 지키는 문제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내 신앙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신앙인이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는 말은 신앙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신앙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나는 신앙인이다, 라고 확신한다면
그렇다면 다른 일보다 신앙생활을 가장 첫 자리에 두고 있는지도 반성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기는 합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맨날 회사 걱정을 할 수밖에 없고,
학생이라면 공부가 정말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이유로 그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회사 걱정을 하느라고 하느님 생각을 할 틈이 없다면
그건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 회사가 망하느냐 마느냐의 위기에 있는데, 신앙생활을 할 틈이 어디 있어?"
라고 항의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위기에 있다면 우선 기도를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학생들 경우에, 중요한 시험이 바로 내일인데, 다음 주인데, 다음 달인데...
우선 시험공부를 먼저 하고, 신앙생활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항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공부하기 전에 잠깐 화살기도도 못합니까?
친구들과의 친목 모임에는 안 빠지고 잘 가면서
성당 단체의 모임은 아주 쉽게 빠지는 모습들...
속세에서의 행사와 본당에서의 행사가 겹쳤을 때
별로 고민하는 모습도 없이 너무 쉽게 성당 일을 포기하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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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뭐... 신자들만 탓할 것은 없지요.
신부들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
신부들 동창 모임이 있다고 미사를 없애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주보에 공지까지 하면서... (오 마이 갓!)
더 심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동사무소에서 무슨 지역 행사를 한다고 성당을 하루 빌렸는데,
그 행사 때문에
그날(평일이긴 했지만) 그 성당의 미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신부가 몸이 아파서 미사를 못드리는 것은 하느님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밤낚시를 갔다 와서 늦잠 자느라고 미사를 못드리는 것은
아주 큰 대죄입니다.
'그 신부에 그 신자' 라는 말이 있기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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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안 보이는 하느님의 초대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밥줄이 걸린 세상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한 번쯤은 잠깐 일을 멈추고 인생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이대로 계속 걸어 가야 하는가?
내가 걷는 이 길이 제대로 가고 있는 길인가?
인생의 끝, 그리고 그 너머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령성월이란,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죽음도 생각하는 달입니다.
죽고 끝나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종교라는 것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진짜로 바쁜 사람들도 있고, 쓸데없는 일로 바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에 어떤 이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아내를 찾아왔는데,
현관에 선 채로 두 시간 넘게 아내와 수다를 떨더랍니다.
그걸 본 남편이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집에 들어오게 해서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하지 왜 그렇게 서서 이야기했냐고?
그랬더니 아내가 대답하기를,
그 아줌마가 '너무 바빠서' 집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고...
너무 바빠서...
아이들은 게임을 하느라고 너무 바빠서...
어른들은 친구들 만나서 술먹고 대화를 나누기에 바빠서...
어떤 이는 연속극을 보느라고 너무 바빠서...
어떤 이는 놀러갈 계획을 짜느라고 너무 바빠서...
어떤 이는 애인 생각하느라고 너무 바빠서...
어떤 이는... 또 다른 어떤 이는...
예수님은 오늘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데...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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