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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30주간목요일(091029.목)

도구 Ludovicus 2009. 10. 29. 07:56

<연중 제30주간 목요일>(2009. 10. 29. 목)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우리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옥황상제처럼 하늘 높은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느님도 아니고,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믿었던 옛날, 옛날의 하느님도 아니고,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

 

그래서 믿을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라는 책은 옛날 이야기책이 아닙니다.

사실 이야기책이라고 하기에는 재미없고,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부정확하고,

과학책도 아니고,

명언집도 아니고...

 

성경은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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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한탄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천 년 전의 예언과 역사 기록일 뿐인가?

 

솔직히 말해서 저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관심이 없습니다.

서기 70년에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초토화시켰다고 하지만,

그래서 그 이후 이천 년 동안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녔다고 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도 다 알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역사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옛날에 이스라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생각하고 책을 덮는다면,

그것은 별로 의미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이라고 믿는다면,

예수님의 한탄과 눈물은 곧 오늘날의 우리를 향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서 또 하나의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에는 완전 초토화될 그런 타락한 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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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을 보면 바빌론 멸망을 묘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바빌론이라는 도시는

묵시록이 기록되기 전, 아주 옛날 옛날에 멸망했던 도시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니고, 미래를 예언한 책입니다.

그러니 과거에 멸망해버린 도시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빌론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온 세상을 타락시키는 부패와 타락의 중심지...

 

성서학자들은 대부분 묵시록의 바빌론을 당시의 로마제국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로마제국 역시 옛날에 망해버린 나라입니다.

성서학자들의 해석대로라면

묵시록은 그냥 옛날 이야기책이 될 뿐입니다.

 

묵시록이 우리들에게도 예언서가 되려면,

바빌론을 우리 가운데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는 그냥 학문적인 이야기이고...

묵시록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이 더 중요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복음서에 나오는 예루살렘 멸망과

묵시록에 나오는 바빌론 멸망은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바벨탑도...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교만, 욕심, 이기심, 사치, 방탕,  쾌락...

스스로 무너져 내린 도시들입니다.

천벌을 받았다는 것은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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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는 열 명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도, 바빌론도 그랬을 것입니다.

 

열 명의 의인... 멸망을 막을 열 명의 의인을 어디서 구합니까?

그 의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그 열명의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덕분에 구원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 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바벨탑, 소돔, 고모라, 예루살렘, 바빌론 등을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의 어떤 도시로 생각하고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우리를 멸망시킬 타락의 도시도 우리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바벨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 욕망의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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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에 묘사된 심판과 재앙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잘 읽어보면 회개를 시키기 위한 회초리일 뿐입니다.

 

멸망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등돌리고,

자신의 욕망만 추구하는 삶 자체가 곧 멸망입니다.

 

어떤 이는 죽어서 천국으로 인도되고,

어떤 이는 죽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천국으로 만들기도 하고 지옥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지옥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해서 천국으로 들어오라고 초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병자성사를 줄 때마다 느낍니다.

자신이 살면서 지은 죄들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을 보면

천국과 지옥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임종...

한 발자욱 앞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벌써 그곳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연락이 늦어져서  환자가 임종한 후에 도착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병자성사를 주긴 하는데,

스스로 맑은 의식으로 회개하고 성사를 받는 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이미 겪고 있는 것 같은 망자의 표정을 볼 때마다

너무 늦기 전에 나부터 회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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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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