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28주간수요일(091014.수)
<연중 제28주간 수요일>(2009. 10. 14. 수)
<너나 잘해라.>
10월 14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성경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지금의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삼아도 딱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브레이크 하나가 작동합니다.
"너나 잘해라."
아무도 그 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판단받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마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강력하게 브레이크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신부들은 다른 신부에 대한 말을 잘 못합니다.
그게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부 다 침묵을 지켜버리면...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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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한국의 진보적인 두 신학자가
교황청으로부터 집필 금지 명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저의 신학생 시절의 스승이었습니다.
진보적이라는 표현은 제가 마음대로 붙인 것이고,
사실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를 말씀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쓴 책 중에 교회론에 관한 책이 문제가 되어서 징계를 받은 것인데,
제가 읽어본 그 책은 그다지 문제될 것 같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의 기준으로는...
지금 이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저의 글들보다 더 강경하지 않고,
그렇다고 교회의 명예를 훼손시킬 내용도 없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표현이 교황청의 비위를 건드린 것은 아닐까, 라고 짐작되는 정도...
하여간에 집필 금지 명령은 내려졌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일체의 저술 활동이나 강연 등을 하지 않고
조용히 본당사목만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그 징계를 내린 부서의 책임자였던 추기경님은 지금의 교황님입니다.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쓸 때마다... 혹시 내 글도?? 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 문제삼으려면 문제삼을 부분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섭다면... 글을 모두 삭제하고 블로그를 폐쇄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사제직인데...
그걸 못하게 한다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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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도인가... 중부지방에 큰 물난리가 났을 때,
당시 티브이에 수해복구현장에서 열심히 복구작업을 하는 모습과
바로 옆의 골프장에서 한가롭게 골프를 치는 모습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수해복구작업을 하느라고 고생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골프나 치고 있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북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방송을 보고 칼럼에 그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쯤에 이런 구절을 적었습니다.
"적어도 종교인들만이라도 고급 스포츠에 들이는 비용을 아껴서
수재민 돕기 성금으로 냈으면 좋겠다."
얼마 뒤에 그 글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골프회 원로 신부님이 정의구현 사제단의 원로 신부님에게 항의를 하고
두 분이 크게 다투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젊은 신부가 어찌 선배 신부의 취미생활을 비판할 수 있느냐?"가 항의의 핵심이었고,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한 항의가 두 번째였습니다.
저 때문에 뜻밖에도 정의구현 사제단이 욕을 먹은 셈이 되었습니다.
정의구현 사제단 원로 신부님은
'당연히 할 말을 한 것을 왜 따지느냐?' 라고 했다고 하고...
그 정도로 그친 것이 아니고 신자들 중에는 저를 향해서
'그 신부님이 너무 한 것 아니냐?' 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골프회 회장 신부님에게 가서 사과를 하라는 압력도 들어오고...
아마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쓴 글의 원고를 찾아서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왜 그 구절이 문제가 되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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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어떤 본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본당신부님 은경축을 맞아 승용차를 선물하기로 사목회에서 의결을 하고,
모금을 했는데...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승용차는 예정대로 구입해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부족한 액수는 승용차 가격의 절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돈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액수는 고스란히 본당의 빚으로 넘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또 다른 본당에서 생겼습니다.
두 본당 모두 느닷없이 상당한 액수의 빚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인터넷에 글을 썼습니다.
처음 제안하고 의결한 사람들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지,
일만 벌여놓고 나 몰라라, 하고 뒤로 빠져버리고
본당에 빚만 안겨주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가? 라고 했는데...
반응이 참 안 좋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반응... 왜 자꾸 그런 걸 따지냐, 라는 반응...
저는 지금도... 그럴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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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데,
제가 신학교 2학년 때, 부제반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게시판에 붙였다가...
신학교에서 퇴학당할 뻔 했습니다.
글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대로 치면 이등병 정도인 2학년짜리가
성직자 계급에 속한... 말하자면 부사관 정도 되는 사람들을 공개 비판했다는
그 방법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저의 죄목은 '하극상'이었습니다.
글의 내용, 즉 비판 자체는 정당했다고 인정 받았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인정 받지 못했고, 퇴학 위기에 몰렸습니다.
한 학기 내내 많이 시달렸습니다.
그때 밤마다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쫓겨나더라도 내 발로 걸어나가지는 않겠다... 라고 다짐하면서...
그럭저럭 그 일은 경고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가 받은 경고는... 글 함부로 쓰지 마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집필 금지는 아니었습니다마는...
그후로 한참 동안은 글 쓸 때마다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와 소설과 희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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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경험 한 가지 더...
2000년도에, 의약분업 시행 당시에 의료대란이 일어났을 때,
병원 문을 닫은 의사들을 비판하는 글을 가톨릭 신문에 투고했다가
그야말로 전국의 수많은 의사들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본당의 신자들이 혹시라도 제가 테러라도 당할까봐
밤에 성당 경계 근무를 할 정도였으니... 그때 상황이 참 심각했습니다.
아마도 평생 먹을 욕을 그 시기에 다 먹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좀 조용해졌을 때 제가 쓴 글을 다시 검토해보니
제 글의 내용보다는 신문사에서 붙인 제목이 문제였습니다.
글의 내용과는 잘 안 맞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아서
그 제목만 본 의사들이 흥분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뭐 어떻든... 누군가는 할 말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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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신부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신부가 신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무래도 덜 날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속사정을 더 많이 알고 있으니
실제로는 더 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고백의 비밀 때문에 죽을 때까지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는 비판과 반성의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애정이 담긴 반성의 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밖에 있는 사람보다는 안에 있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들이 다른 신부들을 감싸기만 한다면...
그래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서로서로 덮어버리고 지나간다면
중세기 시대의 교회 모습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왜 너냐?" 라고 묻는다면, 사실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난한 선교본당만 돌아다녀서
다른 신부들보다는 좀 더 자유스러운 입장에 있었던 덕분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쓸 기회가 자주 생겨서
원고 청탁을 받는 대로 글을 쓰다가 그렇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너나 잘해라.' 라는 말에서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만일에 신부들에게도 인사 청문회 같은 것이 있다면 저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군가 저를 향해 "왜 자꾸 교회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느냐?" 라고 따진다면,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밝아지지 않겠느냐?" 라고 반문하겠습니다.
교회 내부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만 이야기하지
왜 세상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다 글을 쓰느냐? 라고 따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부끄러워질 일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말지,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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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당시의 성직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제들과 레위인이 성직을 맡고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의 영향력이 제일 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혹독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백성의 실질적인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판은 바로 백성들을 위한 비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의 모습과 예수님 당시의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많이 다른 점도 있지만, 아주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특히 안 좋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쓴소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라는 뜻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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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해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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