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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28주간월요일(091012.월)

도구 Ludovicus 2009. 10. 12. 07:47

<연중 제28주간 월요일>(2009. 10. 12. 월)

 

<회개, 표징>

 

'요나' 예언자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니네베'로 가긴 했는데,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대충, 건성으로 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니네베 사람들이 꼴보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니네베는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였고,

앗시리아는 북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하여간에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 예언자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게 됩니다.

단식을 선포하고,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고...

 

니네베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또 그 회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요나 예언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니네베를 멸망시키려던 계획을 취소(연기)하십니다.

 

역사를 보면 니네베는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북부 이스라엘을 앗시리아가 멸망시킨 것이 기원전 721년,

바빌론 제국이 니네베를 함락시킨 것이 기원전 612년.

 

요나 예언자의 활동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회개를 함으로써 니네베 멸망이 연기된 기간은 그다지 긴 세월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를 했기 때문에 멸망이 취소(연기)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마 못가서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았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는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수준의 회개가 아니라,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게 된 회개라는 것.

자신의 힘만 믿고 살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힘을 깨닫게 된 회개라는 것.

 

그렇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그저 '잘못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주님이 누구인지, 인생의 주님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깨닫는 것이 회개입니다.

 

결국 도시는 멸망하게 되지만,

그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믿게 되었다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요나 예언자 이야기를 하시면서

회개할 줄 모른다고 꾸짖으시는 뜻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을 바로 알고 제대로 섬기는 회개.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회개라는 것입니다.

 

그 회개가 안 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도 기적이라고 인정을 못하고,

마귀를 쫓아내면 마귀 두목의 힘으로 쫓아내는 것이라고 헛소리를 하고,

자꾸만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나 하고...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줄 표징이 없는 것입니다.

표징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어차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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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세바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 여왕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솔로몬의 지혜의 말만 듣고서 자기 나라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주님, 즉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갔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 나라를 하느님 마음에 들도록 통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보면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지혜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의 지혜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지혜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입니다.

 

말년에 솔로몬이 후궁들에게 빠져서 우상숭배나 하게 되었을 때,

그는 더이상 지혜로운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면서 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영화의 원천은 하느님이었습니다.

남방의 여왕은 바로 그것을 보고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왕을 언급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세상만사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

하느님 중심으로 살지 않는다면 부귀영화도 지혜도 명성도 다 허무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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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 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는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생긴 종교입니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그 기적이 우리 종교의 바탕이고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기적을 더 바라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부활을 믿는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특별한 기적을 바랍니다.

 

어디서 무슨 계시가 있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어떤 성모상에서 눈물이 흘렀다고 하면 또 우르르 몰려가고...

 

부활이라는 기적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미사 때마다 성체성사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기적을 바라면서 이리저리 갈대처럼 몰려다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믿음 없고 회개하지도 않던 유대인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릅니까?

 

부활, 성체성사... 등의 기적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기적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기적이 아닌,

나만의 기적을 원합니다.

 

내가 기도했을 때 그 기도대로 즉각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야구시합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

기적같은 끝내기 홈런이 터져서 역전승...

보는 사람들에게는 짜릿하고 재미있긴 한데,

우리 인생이 맨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것은 그런 역전승을 바라고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는다면 인생 역전이란 없습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살면서

어떻게 감히 하느님의 기적을 청할 수 있단 말입니까?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후의 끝내기 홈런도

사실 알고보면 행운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2002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4강에 오른 것도 기적이 아니라 실력이었습니다.

상대방은 골을 못넣었고, 우리는 넣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실력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꾸만 행운과 기적만 바라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마치 도박처럼 살겠다는 뜻이 될 뿐입니다.

 

학생이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지금'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저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수준의 회개가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하느님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깊은 수준의 회개.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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