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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25주간금요일(090925.금)

도구 Ludovicus 2009. 9. 25. 07:44

<연중 제25주간 금요일>(2009. 9. 25. 금)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릅니다.

 

"꼭 그랬어야 했는가?"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왜 꼭 그랬어야 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가?

 

여기서 신학적인 이론을 전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떻든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일의 결과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난을 당했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고,

그러나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우리는 배웁니다.

하느님에게 다른 뜻,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릅니다.

 

전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속죄의 죽음을 겪어야 했는데,

그건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

그래서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이 그 일을 하셨는데...

 

십자가라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건 잘 모를 일이고, 어떻든 일이 그렇게 전개되었고, 이루어졌습니다.

 

모른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다 알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무조건 고난을 겪고 죽어야 한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즉 고난을 겪고 죽어야만 메시아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방법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획이었다, 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그런 고난을 겪고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만 믿을 뿐입니다.

 

두 번째 의문,

 

그럼 예수님은 정해진 운명대로, 피할 수 없는 운명대로 그 길을 걸어간 것인가? 라는 의문.

 

만일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운명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인간의 자유의지, 노력 등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 응답, 선택... 그건 예수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피할 수 없어서 그 길을 가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만일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거부했다면?

하느님은 다른 방법으로 당신의 계획을 실현시키셨겠지요.

그래서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은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의 뜻과 계획은 인간의 순종과 협력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것.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또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고.

 

자, 이제 우리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많은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그냥 참고 견딜 것이고,

누군가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습니다.

 

저는 우리 삶에서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걸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예수님만 하느님 뜻을 정확하게 아시고,

그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시니까.

 

그러나 우리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이 하느님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건 분명히 하느님 뜻이다, 라고 확신한다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하느님 뜻인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항상 최선을 다 해서 노력할 뿐입니다.

콜베 성인과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성인처럼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아사 감방에서 죽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수용소를 탈출해서 다음 기회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박해가 닥쳤을 때 자수해서 순교할 수도 있고,

도망가서 산 속에서 숨어 살 수도 있습니다.

 

3.1 운동처럼 비폭력 만세운동을 할 수도 있고,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처럼 폭탄과 권총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든, 위대한 독립투사들이었습니다.

친일파들은 이런저런 변명을 잔뜩 하지만, 그냥 쓰레기 친일파일 뿐입니다.

친일 행위가 인생의 지혜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겪는 고통들 앞에서,

무기력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하느님 뜻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는 하느님이 아니라 살리는 하느님입니다.

박해시대라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신자들을 죽게 내버려두시지는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구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냥 다 죽어버리기를 바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운명이란 없습니다.

사주팔자 같은 것도 없습니다.

관상, 손금도 없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만들어갑니다.

 

누구에게나 죽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운명에 정해진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이라면

그건 자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자살이 아닙니다.

 

그럼 예수님은 재판 때에 왜 침묵을 지키셨을까요?

적극적으로 변론을 하고, 반박을 하고, 하셨어야 했는데...

마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신 다음에

기억을 되살려서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는 현장 기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살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셨습니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조금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정해진 각본이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하느님의 뜻이라면 순종할 각오를 해야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비겁한 방법까지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겁하게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왕에 죽을 것이라면, 거룩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떻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추한 모습으로 몸부림치지는 말고,

죽을 때 죽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끈질기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저런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분들께 정말로,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고통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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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에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참메시아가 되십니다.' 라는 구절,

'죽지 않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라는 구절,

그런 구절들은 오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아니, 잘못된 말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야만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었기 때문에 메시아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기 전에도 메시아이셨습니다.

죽지 않아도 되었는데, 죽음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메시아가 되신 것이 아니라,

메시아로 오셨는데, 인간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인간들이 갑자기 다 회개했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고도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셨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기 위해 일부러 죽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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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글쓴이 : Fr 송영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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