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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23주간월요일(090907.월)

도구 Ludovicus 2009. 9. 7. 07:49

<연중 제23주간 월요일>(2009. 9. 7. 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내용이 많은데

9월 7일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병자 치유 내용은

다른 이야기들과는 좀 다릅니다.

 

병자 치유 이야기는 대부분 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자비심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9월 7일의 이야기의 핵심은 안식일 율법에 관한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장애자는 예수님께 자기 몸을 고쳐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마태오복음을 보면,

그 장애자는 예수님보다 먼저 회당에 들어가 있었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먼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어도 됩니까?’ 라고.

 

그런 상황을 보면,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장애자 한 명을 데려다 놓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장애자를 부르십니다.

그 함정을 알아차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음모를 정면 돌파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 장애자를 고쳐주신 것은 자비심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보면 안식일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그 장애자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 장애자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급한 병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즉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고쳐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계기로 안식일의 정신과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셨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 일을 계기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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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가르침의 뜻은 분명합니다.

율법보다 하느님의 뜻이 먼저이고, 사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곧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율법 준수는 거짓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신앙생활의 기본은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 안 짓고, 벌 안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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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카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는지,

성경에는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카인은 제사를 바쳐야 하니까 바쳤을 것이고,

아벨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제사를 바쳤을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그는 성전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했던 것은

하느님보다는 자신의 왕권 강화가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하느님께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위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당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민족 정체성을 율법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곧 민족 반역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비심이 없었겠습니까?

그들도 자선 행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실천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하느님과 이웃보다 율법을 더 중시해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율법 자체에 집착해버린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다른 율법들도 다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왜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 목적, 정신을 잊지 말라고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니까 성당에 간다, 라는 것과

성당에 가는 것이 큰 기쁨을 주는 일이니까 간다, 라는 것의 차이.

 

그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대체 성당에 왜 다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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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은 저의 영명축일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미사 드리는 일 외에는 하는 일도 없고 해서

축하 받기도 미안하고 염치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신자들은 며칠 전부터 잔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육식을 하지 못하는 저를 위해서 여러 음식을 준비했는데,

상을 차린 것을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척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습니다.

 

미사 때에 보니 성가대원들이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축가도 두 곡이나 준비했습니다.

제 축일을 위해 성가대원들이 한복 입은 모습은 저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제대 장식 꽃꽂이를 멋있게 했습니다.

어디서 제 사진을 구해서 축하 포스터를 만들어서 붙여놓았습니다.

케이크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신자 수도 적고 규모도 작은 곳이지만,

그 정성과 사랑은 도시의 큰 본당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진심어린 축하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녀님들과 신자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일도 하지 않는 제가 너무 미안했습니다.

 

전에 도시 본당에서 보좌 신부였을 때 받았던 축하식과 비교되었습니다.

형식적이고, 마지못해서 하는, 틀에 박힌 축하식도 있었고,

어떤 본당에서는 아예 축일도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친 적도 실제로 있었고...

 

선물이라는 것, 축하라는 것은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가족끼리, 애인끼리, 친구끼리 축하를 할 때에도 그렇고,

어떤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축하도 그렇고...

마음이 담겨 있는지, 아닌지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다 압니다.

알면서도 대충 형식적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은 것이 인간 세상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잔치입니다.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는지

제대에서 바라보는 주례 사제의 눈에 다 보입니다.

억지로 앉아 있는 사람과, 경건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대부분의 성당을 보면 신자들의 좌석 뒤편, 입구 쪽에 시계가 걸려 있는데,

그 시계는 주례 사제가 보라는 시계입니다.

아마도 강론을 너무 길게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미사가 지루하다고, 또는 강론이 너무 길다고,

고개를 돌려서 뒤에 걸려 있는 시계를 자꾸 바라보는 모습,

그런 모습은 금방 주례 사제의 눈에 뜨입니다.

미사 중에 계속 딴 생각하는 것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경건하지 못하면 자세가 바로 흐트러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기도를 억지로 하면 그게 기도입니까?

억지로 미사 참례를 했다면 주일을 지킨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딴 데 가 있었으면서

껍데기로만 기도하고 껍데기로만 미사 참례하고...

그걸 가지고 자기 할 일 다 했으니 천국의 입장권을 확보했다고 큰소리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 들여다보시는 분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기도, 마음에도 없는 선행, 마음에도 없는 신앙생활,

그건 기도도 선행도 신앙도 아닙니다.

그냥 쓸모없는 껍데기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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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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