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중제22주간화요일(090901.화)
<연중 제22주간 화요일>(2009. 9. 1. 화)
<권위>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기가 말하는 것들의 근거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전통이나,
다른 유명한 학자들의 가르침에 두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는,
하느님 말씀을 직접 전하거나, 당신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침과 삶이 곧 하나였기 때문에,
다른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고 힘이 있었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점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제자 수도 적었습니다.
권력자들이나 다른 학자들한테 인정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에 힘이 있고, 권위가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 말씀이 하느님 말씀이었고,
예수님의 삶이 당신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고,
그리고 사랑에 가득 찬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권위와 힘에 압도된 것입니다.
권위라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권위에 대한 존경심도 강제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옛날 왕들이 행차할 때,
길에 사람들을 얼씬도 못하게 하거나
길가에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고 있게 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왕들이 존경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대통령이 한 번 지나가게 되면 온통 야단법석을 떠는데,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을 자신이 없는 대통령일수록 경호원도 많고,
더 삼엄하게 경계를 펴고, 백성들을 겁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존경심 대신에 공포심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민주주의가 정말 잘 발달하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사랑 받는 나라의 경우에는
경호원도 별로 없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 한가롭게 산책하거나
자유스럽게 시민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힘으로 누르는 것은 참된 권위가 아닙니다.
정말 존경받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회초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가르칩니다.
가정에서 정말로 권위가 서고 존경받는 가장은
집에서 식구들에게 언성을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백성을 통치하는 사람도 자신이 제대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자신한다면,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면,
군대나 경찰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경찰을 동원하는 일이 많은 대통령은
자기가 그만큼 존경 받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낼 뿐입니다.
정치를 잘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 힘으로만 정치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군대나 경찰력에만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수록 그는 더욱 더 존경받기 어렵게 됩니다.
힘에 복종하는 것은 존경이 아닙니다.
반면에 존경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입니다.
남을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위치에서 정말 권위 있게 다스리고 싶고 존경을 받고 싶다면,
예수님에게서 참된 권위를 배워야 합니다.
자기의 말과 삶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고,
힘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지도자는 존경 받지 못합니다.
지시만 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않는 지도자는 존경 받지 못합니다.
사랑은 없고 규율만 있는 지도자는 존경 받지 못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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