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앙 자료

[스크랩] 106. 고해성사의 기원

도구 Ludovicus 2009. 8. 23. 09:08

 

 

 

  106.  고해성사의  기원
   
      먼저  고해성사라는  요어부터  설명하고  다른  것에  대하여  알아보자.   오늘
    우리가  고해성사告解聖事라고  부르는  성사는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요어로  통용  되었다.   교부들은  주로  참회의  성사라고  불렀다.     신약성서에
  보면  마음과  영혼의  변화,  전적인  회개를  지칭하기  위하여   하느님께로  머리
    돌리는  행위가  언급되어  있다.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하신 
  말씀이  회개이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마태 4,17).    여기서
  회개라는  것은  일단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고,    동안  잘못  가던  길에
    벗어나  하느님께로  머리를  돌리는  것을  뜻한다.   이런  성서의   전통을 
  어받아   교부들은  오늘날  우리가  고해성사라고  부르는  성사를  참회塹悔의 
  사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참회의  성사에서  강조되는   것은    개개인의  뉘우
  치는  마음과    뉘우침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   이후에는  주로  고백성사告白聖事라고  불렀
  다.    죄를  용서받을  목적으로  성사권이  있는  사제  앞에서  죄를  남김없이 
  하는  고백이  강조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는   죄를  뉘우치는  마음과
  행동에  치중해서  생각했는데,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는  교회법에  따라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측면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실  고백성사라는  용어는
  참회성사라는  용어와  비교해  볼 때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용서를  상당히  축소
  시키는  감이  없지  않다.      교회법에  마추어  일정한  예식에  따라  고백해야만
  죄를  용서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교회법의  틀 안에다  억지로
  집어넣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고백자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죄를  고백해
    하고  사제도  역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죄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  고해성사가  무슨  자동판매기처럼  생각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화해和解의  성사라는  용어가  등장
  하였다.   화해성사라는  용어는  죄인이  죄를  뉘우침으로써  자비로우신  하느님
     화해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루가복음  15장을  보면  이런  사실을   
    있다.  작은  아들이    동안의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을때  아버지가  마주  뛰어  나와  끌어안았으며,   작은  아들은  아버지와 
  해하고  다시  아버지  집에  살게  된다.      이처럼  죄인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화해하고  새롭게  만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화해성사라는  용어이다. 
  처럼  참회성사,   고백성사,   화해성라는    가지  용어는  고해성사의  풍부함을
  각자  나름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고해성사는  어디에서부터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고해성사
    주님의  말씀과  행적에    원천을  두고  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상  제사
  로써  사람과  하느님  사이를  화해시켰다.    이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고해성사
  라고      있다.
   
     주님께서는  직접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다.  마태오복음  9장을  보면  사람들
    중풍병자    사람을  침상에  눕힌    주님께  데려왔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서받았다." (마태 9,2).     이처럼  주님의  활동에는  죄를  용서하는  활동도  포함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루가복음  7장을  보면  평판이  나쁜  여자가  주님의 
  발을  씻어  두렸다.  주님께서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  죄는 
  서받았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루가 7,48.50).   이처럼
  주님께서는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고  억눌러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언젠가  승천하실  것에   대비하여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시기로  생각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을  대표하여  신앙고백을 
  베드로  사도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가  무엇
  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 16,19).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드디어  결정적으로    용서의  권한을  제자들에게 
  셨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느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
  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남아  있을 
  이다." (요한 20,23).       용서  권한에  대하여  요한  복음  20장 23절처럼  명백
  하게  말하는  구절이  없다.
   
     이처럼   고해성사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의  권한을  주셨다.
   
   
   
   
   
                                          출처 ;  이중섭 신부.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교리'
   
   
   
   
   

출처 : ┗━ 영원에서 영원으로 ━┓
글쓴이 : 해성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