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연중제18주간금요일(090807.금)

도구 Ludovicus 2009. 8. 7. 10:11

<연중 제18주간 금요일>(2009. 8. 7. 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십자가' 라는 말만 들으면 거창한 것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그렇게 늘 거창하기만 할까요?

 

예수님 뒤를 따라가기 위한 십자가란 과연 무엇일까?

사도들이 예수님 뒤를 따라가기 위해 지고 간 십자가는 무엇이었을까?

 

저는 그들의 십자가는 사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가 17,9-10)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곧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되었지,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사도들은 사도로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예수님 뒤를 따르는 십자가였습니다.

 

교황은 교황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신자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군인은 군인으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십자가냐? 라고 따지기 전에 먼저,

그 당연히 해야 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효자상, 효부상 시상식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인간이라면 자기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효자, 효부를 선정해서 상을 주고 모범으로 삼는 것 아닙니까?

 

군인들이 보초를 잘 서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게 잘 안 되고 있으니까,

보초 근무를 잘 했다고 상을 주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뒤를 따라가려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아주 당연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곧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입니다.

사실 사랑의 실천이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라.' 하신 예수님 말씀은

'내가 가르친 대로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을 제대로 실천해야 나를 따를 자격이 있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십자가를 지겠습니까?

 

사실 십자가를 고통의 상징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고통의 상징이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사랑의 상징입니다.

 

사랑이 고통으로 다가올 때, 바로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아주 좋은 예가, 소화 데레사 성녀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24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수도원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무슨 업적을 남긴 것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한 일이라고는 작은 사랑을 끊임없이 실천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성녀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작은 사랑이든, 큰 사랑이든 사랑은 위대합니다.

 

십자가를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십자가 지는 것을 기피합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 그 일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도 하지 않는다면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이 말씀을 해석하기 위해서 거창하게 신학, 철학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흔히 말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큰 것을 얻으려면 작은 것을 포기하라는 것,

영원한 것을 얻으려면 유한한 것을 버리라는 것,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각자 인생이라는 보물 주머니를 하나씩 주셨는데,

어떤 사람은 그 주머니에 보물을 넣고,

어떤 사람은 그 주머니에 쓰레기를 넣습니다.

 

쓰레기도 재활용하면 돈이 된다고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도 좋은데...

문제는 금, 은, 보석을 눈앞에 두고도 왜 쓰레기를 선택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체 무엇이 보물이고, 무엇이 쓰레기입니까?

 

보물이란 귀한 것입니다.

쓰레기란 하찮고 흔한 것입니다.

 

죽도록 훈련을 해서 단 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보물이 됩니다.

만일에 개나 소나 다 금메달을 준다면, 그것은 쓰레기입니다.

 

도둑질을 해서 자기 집에 금은보화를 쌓아놓았다고 해도 그것은 쓰레기입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 그것은 쓰레기입니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에 합격하는 것, 그것은 쓰레기입니다.

 

무엇이 보물이고, 무엇이 쓰레기인지는... 어린아이도 다 아는 상식입니다.

---------

 

예수님 말씀의 '목숨'이라는 말에 이런저런 해석을 붙일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곧 제대로 사는 것이고,

개, 돼지처럼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온 세상의 쓰레기를 다 모아놓고선 혼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갖 더러운 돈과 더러운 권력들...

그곳은 쓰레기 매립장입니다.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버릴 것은 버리고, 얻을 것은 얻는 것이 지혜입니다.

---------------

 

필사즉생, 필생즉사.

예수님 말씀과 충무공이 남긴 말씀이 같습니다.

성경의 진리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외세가 밀려 들어올 때 외세에 빌붙어서 개인의 이익만 추구했던 무리들,

쓰레기입니다.

온갖 박해와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

우리 민족의 보물입니다.

 

이 민족이 목숨을 유지한 것은 바로 그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예외없이 외세에 빌붙어서 먹고사는 일만 생각했다면,

우리 민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도 외세에 빌붙어서 아양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민족 하나만의 문제이겠습니까?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살고 싶다면,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등산을 가려면 등산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야 합니다.

해수욕장에 가려면 해수욕장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식에 가려면, 장례식에 가려면... 기타 등등... 필요한 것들이 다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야 합니다.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겼다면, 그 나머지는 버려도 됩니다.

아니,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

 

십자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목숨을 얻는 방법...

하느님 나라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버리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 Fr.송영진 모세
글쓴이 : Fr 송영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