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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거룩한변모축일(090806.목)

도구 Ludovicus 2009. 8. 6. 09:04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2009. 8. 6. 목)

 

<희망>

 

옛날, 어느 날,

마르코는 그날도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모아서

복음서를 엮는 일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르코를 바라보던 베드로 사도가 그를 불렀습니다.

 

"여보게 마르코, 잠깐 일을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듣게나."

 

마르코가 베드로 사도 곁으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회상에 잠겼습니다.

주님과 함께 지냈던 날들의 행복했던 추억...

 

"어느 날, 한 번은 주님과 나,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함께 산에 올랐었지.

나는 왜 갑자기 산에 올라가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따라갔어.

주님께서는 가보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만 하셨고..."

"......"

 

"그날 나는 천국을 보았다네..."

"예? 천국이라고요?"

 

마르코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놀라운 모습으로 변하셨지. 너무나도 눈이 부셨어...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을 찾아온 것이었어."

"아니, 옛날 옛날에 죽었던 그 사람들이 나타났다고요?"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가 아프거나, 환시를 보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도 들었고... 너무 황홀한 시간을 보냈지."

"도대체 무엇을 보셨습니까?"

 

"천국을 보았다니까..."
"천국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그건... 내 능력으로 표현할 수 없어. 아니,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잠시 침묵을 지키던 마르코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까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지."

"......"

 

"그리고 나도 내가 본 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고...

하지만 이제 자네가 만드는 복음서에 꼭 기록해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계신 곳을 말하려면..."

"그러면 그때 보신 것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셔야지요."

 

"글쎄... 너무나도 좋았고,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는 것 외에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

나는 그냥 영원히 거기에서 살고 싶었어.

조그만 초막을 만들어서 살자고 주님께 말씀드릴 정도였어.

그런데... 사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어. 그만큼 황홀했으니까..."

 

마르코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복음서를 기록하는 일을 다시 시작한 마르코는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사도가 말해 준 이야기를 들은 그대로 복음서에 적어넣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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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는 제가 한 번 상상해 본 것입니다.

 

사도들이 순교에 이르도록 믿음을 지키고 선교활동을 하고 교회를 건설한 힘의 원천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사도들과 초기 신자들의 근본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그들의 희망의 원천이었습니다.

부활 후의 세상, 부활 후의 삶에 대한 희망.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복음서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보았는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을 것입니다.

 

훗날 바오로 사도도 자신이 천국까지 갔었던 일을 편지에 남겼지만,

천국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천국이 어떠했는지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도 순교 직전에 하늘나라를 보았지만...

역시.. 그곳을 묘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포르투칼의 파티마 기적의 주인공인 세 어린이도 천국을 보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좋은 곳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어할 정도로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는 했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 성인 성녀들이 천국을 보았거나 비슷한 체험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뭔가를 보았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걸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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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을 보여주시고,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해 주시고

제자들 앞에서 거룩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은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미리 믿음과 희망을 주시려는 것이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그걸 체험했다고 해서 제자들이 갑자기 믿음이 더 강해졌거나

예수님의 수난 때에 용기를 발휘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한 후 세 제자가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기억은 평생 그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서

그들에게 지치지 않는 희망의 원천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박해와 고난을 겪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희망 하나...

우리가 가게 될 그곳에 대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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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고향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한국 사람들만의 모습일까요?

 

나그네가 되어 떠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가족이 있는 그곳에 가고 싶어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유행가 가사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천주교 교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나그네길을 걷다가 언젠가는 하느님 계신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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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체험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저기 히말라야 산속의 어떤 종교에서는

도를 처음 닦기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마약을 피우게 하고,

그때의 환각 상태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천국을 체험하게 한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간직한 채 계속 도를 닦도록 한다고...

 

글쎄요...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천국을 체험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단순한 육체적 쾌락 같은 것 말고,

정말 영혼이 온통 순수해지고, 마음이 한없이 맑아지고,

글자 그대로 순수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

한없이 착해지고, 한없이 여려지고,

모든 욕심이 사라지고, 세상 모든 번뇌를 잊게 되는 그 순간...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체험의 기억만 잘 간직할 수 있다면 신앙생활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교리를 몰라도, 기도할 줄 몰라도, 마음과 달리 몸이 따르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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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저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소망합니다.

그냥 스치듯 지나가지 말고 그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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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인의 독특한 심성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가 없어서, 그냥 'Han'으로 표기할 정도인데,

 

그건 원한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도 아니고,

참으로 복잡 미묘한 심리입니다.

 

'한'... 이제 조금 나이 들고보니 어렴풋이 '한'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감추어두었던 '한',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그런 '한'.

누구 탓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탓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지만, 의지로도 안 되는... 그 '한'.

 

저는 천국이 모든 '한'을 다 풀어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러운 일생을 살다가신 어머니의 한,

그렇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생각날 때마다 눈물짓는 나 자신의 한.

 

우리 민족의 모든 한...

그 모든 것들이 다 풀려서 정말 모두가 황홀할 정도로 순수한 기쁨만 누리는 곳.

 

만일에 그런 곳이 세상 천지 아무 데도 없다고 한다면...

정말 신앙생활 할 맘이 안 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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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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