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9년 5월 23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도구 Ludovicus 2009. 5. 23. 09:3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5월 23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8,23-28

23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어제는 서울 사당5동 성당에서 레지오 전 단원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한 달에 5~6번의 강의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어제 강의를 하면서 문득 들은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새벽 묵상 글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제 강의는 몇 달 전에 미리 부탁받았던 것이지만, 제가 좀 모자라서 몇 시간짜리 강의를 해야 하는지를 수첩에 적어 놓지를 않았습니다. 3시간인 것 같기도 하고, 4시간이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강의할 내용을 여유 있게 4시간 분으로 준비해서 갔지요.

시간 맞추어 도착을 했고 강의 시간을 여쭈어보니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3시간이랍니다. 준비한 내용보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기 위해서 말을 빨리하면서 강의를 했습니다.

드디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문제는 제가 할 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지요. 즉, 제가 준비한 강의록의 절반 정도밖에 하지 못한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마무리를 하면서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떠올렸습니다.

그만큼 주님에 대해서 전해드릴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강의록을 읽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주님에 대한 체험도 많아졌고 묵상도 꽤 많이 해서 함께 나눌 이야기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자연스럽게 부족하게 되더군요

문득 사제서품을 받고나서 몇 달 뒤, 어느 성당에서 견진교리를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가 저의 첫 번째 데뷔전이었지요. 얼마나 떨리던 지요. 서품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제게 주어졌는데, 그 한 시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강의를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이 준비했다고 했지만, 읽기에만 급급하다보니 말은 빨라지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남는 것입니다.

이렇게 1시간을 말하기도 힘들었던 제가 이제는 4시간 이상을 말하라고 해도 끄떡없는 저로 변했습니다. 말하는 기술이 늘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주님께 대한 체험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을 체험 많이 한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 할 말도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할 말도 없겠지요. 그러므로 주님을 체험하기 위해서, 즉 주님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오늘 복음을 통한 예수님의 말씀인 ‘청원기도’입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할 수 있고, 또 그렇지 않다면 친해지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청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아직 주님을 잘 모른다면, 또 주님과의 관계가 부족하다면 친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고 사람들에게도 주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기쁨은 더욱 더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칼은 칼집보다 오래 가고, 영혼은 가슴보다 오래 간다(조지 고든 바이런).



진정한 강함(정용철, ‘행복한 동행’ 중에서)

사람들이 왜 강하게 보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덮기 위해서
더 강한 말과 모습을 하는데
그것이 힘들어 보일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나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좋습니다.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름답고,
슬프다고 말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우리 마음은
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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