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순례객들이 묵주알로 꾸민 '성모신심의 장'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성모, 순교자, 성체 신심의 복음자리 죽산성지. 성모신심인 땀의 순교와 순교신심인 피의 순교를 한자리에서
체험하며 이를 결합하는 성체신심을 느낄 수 있다.
▲순교자묘역과 대나무 모양을 형상화한 현양탑. 두둘기 마을과 잊은 터라 불려진 죽산을 생각하면 순교자 묘역 앞에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피에타상. 성지 곳곳에 세워진 성상들은 순례객들을 자연스레 묵상으로 이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와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 성모마리아
조각상.
▲성지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표석. 표석을 지나 800m쯤 들어가면 비로소 성지가 나온다.
너무 뜨겁다. 가마솥에 견줄만한 찜통 더위로 만사가 귀찮기만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열치열은 예로부터 더위는
더위로 다스려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 산물. 죽산성지(수원교구)는 온 가족이 이열치열 지혜를 함께하기에 제격인 장소, 특별한 성지다. 성모신심,
순교자 신심, 그리고 성체신심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기도 장소인 그곳에선 지금 흐드러지게핀 장미꽃 향기와 보기만해도 시원한 수목들이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쯤은 방학중인 아이들도 놀이에 지쳤을터, 아이들과 함께 잘 가꿔진 정원처럼 아름다운 죽산성지 순례에 나서보면
어떨까. -----------------
#1. 두둘기 마을
1866년 병인박해. 포졸들이 처형지가
있는 죽산에 모여들었다. 포졸들 뒤로는 용인, 안성, 원산 등지에서 잡아들인 '천주쟁이'들이 줄줄이 묶여있다.
"이봐! 저
고개만 넘으면 당신들은 죽는거야. 살려줄테니 돈 좀 내놔봐. 그럼 풀어줄게." "없어? 그럼 맞는 수밖에 없지. 네놈들 잡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기나 알어?"
처형지를 코앞에 두고 포졸들이 목숨을 갖고 흥정한다. 그리고는 이내 몽둥이질이다. 주먹질에 발길질까지
인정사정없이 두둘겨 팬다. 혹시나 빠져나올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몰래 뒤쫓아온 가족들은 포졸들에게 짐승처럼 맞는 가족을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잡혀온 이들은 처형지에서도 돌에 묶여 머리가 터져 죽을 때까지 맞았다. 당시 죽산에서 100여명이 넘는 '천주쟁이'들이
이처럼 두둘겨 맞아 숨졌다. 슬픈 이름 '두둘기 마을'은 그렇게 붙여졌다.
#2. 잊은
터
"아니 한 가족을 한번에 죽이는 것은 법으로도 금했다면서, 저것들은 사람도 아니야." "이제 또 줄줄이
죽어나겠네. 그런데 왜들 저렇게 천주님인가 뭔가를 믿어 저 고생이래."
마을사람들은 입만 열었다하면 여기중 일가 얘기다. 박해가
심해도 한 가족을 한날 한시에 처형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했지만 죽산 포졸들은 눈하나 깜짝 않고 여기중과 그 며느리, 손자를 한날 한시에
죽였다.
여기중 일가 뿐만이 아니다. 여정문 부부도 아들과 함께 같은 날 처형당했다. 여정문 부부가 포졸들에게 잡혀 끌려가는 것을
본 15살 아들은 차마 부모를 못본 척 할 수 없었다. 부모를 끌고 가는 포졸들에게 자신도 신자니 잡아가달라고 했다.
이렇게
부자, 부부, 한 가족이 처형되는 일이 많은 죽산을 두고 사람들은 '거기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고 말했다. 그래서 죽산은 '잊은
터'라는 아픈 이름을 하나 더 갖게 됐다.
두둘기 마을과 잊은 터 역사를 갖고 있는 죽산의 현재는 '성모,
순교자, 성체 신심의 복음자리' 죽산성지(전담 이용남 신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가 대신하고 있다. 오직 하느님밖에 몰랐던 순교자들
피땀을 고스란히 묻어둔 채 슬프도록 아름다운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지 앞에 '성모, 순교자, 성체 신심의 복음자리'라는 긴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성지를 직접 가 보면 알 수 있다. 성모신심인 땀의 순교와 순교신심인 피의 순교를 한자리에서 체험하며 이를 결합하는
성체신심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어서다.
사실 죽산성지는 이 세가지 교회 전통 신심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성지 개발부터 계획적으로
조성한 성지다. 가톨릭 교회 안에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신심 가운데 기복적 요소가 없는 3가지 신심이 바로 성모신심, 순교자신심,
성체신심이기 때문이다.
▨성모신심
성지가 시작되는 곳인 일주문-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문-을 넘으면 비로소 성역(聖域)이다. 푸른 잔디밭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커다란 묵주알들이 성역을 둘러싸고 있다. 성모신심의 장이다.
묵주알 하나하나는 삼각기둥이 받치고 있다. 이 삼각기둥은 성체를 모실 때 손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성부ㆍ성자ㆍ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 의미도 지니고 있다.
특히 여름철이면 묵주알마다 둘러진 50개의 장미덩쿨이 순례객들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처형장이었다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또 양쪽 가장자리에는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처럼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고 기도할 수 있도록 대리석을
깔고 장미터널을 만들어놨다. 땀의 순교를 생각하며 장미터널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죽산성지가 아니면 쉽게 체험할 수 없다.
▨순교자신심
묵주기도를 바치며 충만해진 성모신심은 순교자 묘역에 다다르면서
순교자신심으로 옮아간다.
순교자 묘역에는 무명 순교자 묘를 중심으로 여정문, 여기문 일가를 비롯 김 도미니코, 문 막달레나 등
「병인박해 치명일기」와 「증언록」에서 밝혀낸 25명 순교자 묘 25기가 나란히 펼쳐져 있다.
두둘기 마을과 잊은 터라 불려진
죽산을 생각하면 순교자 묘역 앞에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피의 순교로 붉게 물들인 하느님 사랑은 죽산성지를 울긋불긋 물들이고 있는 장미와
야생화들이 대신하고 있다. 꽃들이 유난히도 붉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까.
▨성체신심
묵주기도와 순교자 묘역 순례로 체험한 성모신심과 순교자신심은 십자가와
성전을 통해 성체신심으로 결합한다. 순교자 묘역 뒤에 세워진 십자가 상과 예수부활상, 그리고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14처, 성체조배를 할 수
있는 소성당과 대성당은 순례객들을 자연스레 성체신심으로 이끌고 있다.
땀과 피가 하나된 순교를 성체신심으로 승화시키면서 비로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특히 십자가의 길 14처는 둥근 후광모양으로 만들어 이곳에
묻힌 순교자들이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100여종이 넘는 수목과 꽃들, 야생화로 가득한 죽산성지는 성지라기
보다는 잘 가꿔진 정원같다. 그래서 성지를 들어서는 마음이 한결 편안한지도 모르겠다.
성지가 시작되는 일죽문에 들어서기 전에는
'만남의 장'이라 불리는 작은 쉼터가 조성돼 있다. 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거나 정자에 앉아 한숨 돌리며 성지에 들어서는 마음을 가다듬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다.
죽산성지는 또 '꽃이 지지 않는' 성지다. 봄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지면 부활대축일쯤 조팝나무 꽃이 성지
10리길을 새하얗게 수놓는다. 여름엔 장미가 성지를 뒤덮고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조팝나무 단풍도 형언할 수 없는 색을
발한다. 앙상한 가지들로 황량할 것 같은 겨울엔 백일홍과 눈꽃들로 눈부시며 늘 푸른 사철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예술에 가까운
조경은 모두 성지지기 이용남 신부 손끝에서 나왔다. 8년째 성지를 맡고 있는 이 신부에겐 '순교자들 땀과 피가 서린 이곳을 어떻게하면 엄마 품
같이 따스한 곳으로 만들까'하는 생각밖엔 없다.
나무 한그루 없던 죽산성지 1만7000평 일대를 이처럼 가꿔놔 주위사람들은
죽산성지를 두고 '기적'이라고도 말한다. 성지 옆 3500평 땅에는 복숭아, 살구, 매실, 자두 등을 심어 작은 과수원도
만들었다.
이 신부는 "성모신심, 순교자신심, 성체신심이 깃든 성지로 만들려면 전례와 교회 전통에 맞는 조경이 따라야 한다"면서
"신자들에게 이곳이 솜사탕처럼 포근한 장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삽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자들이 성지에 와
기도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한 이 신부는 "누구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죽산성지는 순교자성월을 맞아 9월3일 오전 11시 순교자 현양대회를
개최한다.
글=박수정 기자crysta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
<<이렇게 오시면 됩니다 >>
수원교구 죽산성지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일죽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우회전 한 뒤 왼쪽 광장 휴게소 쪽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그러면 '죽산성지' 안내표석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800m 정도 더 가면 된다. 7000여평 대형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주차문제는 접어둬도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울
남부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안성행 버스를 타고 죽산에서 내리면 된다. 1시간 정도 걸린다. 이후 일죽행 시내버스를 타고 광장휴게소에서 하차,
죽산성지 안내표석을 따라 30분정도 걸으면 성지가 나온다.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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