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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탈북인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의 간증을 들으며...

도구 Ludovicus 2008. 12. 27. 14:16

 

 

 

 

 

 

 

 

 


2008년 12월 14일 주일 저녁, 
서부 뉴잉글랜드 합창단의 제 3회 정기연주회는
탈북 피아니스트와 함께 하는 탈북 어린이 돕기 위한 연주회로 열렸다.
탈북인 김철웅 피아니스트...
지금은 한세 대학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교수로 재임하고 있으며
함께 동행한 소프라노 윤경희 교수님도 백제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계신다.
어울어진 연주와 애창은 합창단의 정기연주와 함께 2008년의 끝자락을 감동시켰다.
그리고...삼일 후 수요예배 시간에,
김철웅 피아니스트는 뉴헤이븐 장로교회에서 간증을 한다고 한다.
연주 중간에 잠시잠시 들었던 북한의 소식과 탈북인에 관한 것 외에
나는 그가 어떻게 탈북을 했으며, 또 어떻게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게
되었는가가..너무나 궁금하고, 너무나 듣고 싶어서 애타는 삼일간의 
작업(?)을 마쳐서야 남편과 함께 뉴헤이븐으로 향하게 되었다. ((*^_ _ _^*))
내 남편의 고향은 평안남도 성천이기에...
고향사람이 왔다며,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그리고, 외숙모님의 조카이신 예일대 의대 김정환 교수님을...
지난 7월에 인터넷으로 찾아드리면서 기회가 되는데로 찾아뵙다고했던 일을
이번에서야 예일대 근처에 있는 뉴헤이븐 장로교회이기에 만나뵈올 수 있었다.
사모님께서 그 교회 집사님이셨고, 교수님께서는 지휘자님과 안면도 있으신 분이셨다.
참으로 넓은 미국 땅이지만, 어느 때 보면, 한인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
급히 서둘러 떠났어야했기에...
그렇게 간절히 녹음을 원했던 녹음기를 잊어버리고 떠났다...
그랬기에 그의 간증이 내게는 한 번뿐이 들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잊고간 녹음기를 생각하면 너무나 속이 상한다.
왜 이리 잊는 일들이 많아지는지..그것을 받아들일 때마다 은발의 수효가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하루가 지났지만, 김철웅이라는 한 젊은이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던
리챠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을 들으며...그의 간증을 정리해본다.
직접 듣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어찌 내 혼자 들을 수 있는 간증이랴!
아직은 세련되지 않은 간증, 그렇기에 순수함이 묻어있는 간증.
조금씩 남아있는 북한어투며..중간중간 그의 특유한 위트들을 어떻게
다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간증을 들은 나의 느낌들을 나누는 것이 될 것이다. *^^*
그는 이미 알려진데로 여덟 살에 평양음악무용대학에 들어가서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북한에서도 알아주는 국립 교향악단의 수석 피아니스트로써 자리매김을 한 
유능한 피아니스트였다. 부모님은 도지사로써 북한에서는 부유층에 속한 분들이셨다.
북한이라고 하면...
춥고 배고프다는 단어가 떠올려지는 우리들에게...
그는 탈북을 하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할 뿐 아니라
인상에서 풍겨주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형이었다. 따뜻한 느낌이다.
더욱이 북한에서 러시아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그가...
무엇이 부족하여 북한을 탈출하였는가?라는 것이
많은 이들이 질문을 해오는 것 중에 하나라고 한다...
간증을 시작하면서...
첫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떠한 경우에라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1mm만 북에서 태어났다고해도, 우리가 놓여져 있는 상황은 다를 것이니까...
북에 대해서 다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있겠냐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굴욕적인가!..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늘 감사해야 된다는 이야기로
부터 간증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감사한 것들은 잊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우쳐주었다. 
김철웅 교수가 표현한 것처럼, 
이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피아노 곡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들은 아니되고,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19세기까지의 클래식 
음악을 듣고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후의 음악은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기에
그런 음악을 들으면 주체사상을 부르짖고 있는 북한에서는 의식성이 망가지기 때문에,
들을 수도 없고, 연주도 당연히 할 수 없도록 법조항으로 붙여놓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러시아에서 들었던 이 '가을의 속삭임'은 너무나 감미로웠다고 한다.
짝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어떻게해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녀에게 이 곡을 바치고 싶어서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보위부에 보고가 되어 A4 용지 열 장의 각서랄까, 시말서같은 것을 쓰게 된 것이다.
이십 여년 동안 피아노를 쳐온 김철웅 피아니스트...
그의 남은 삶 또한 피아노를 계속 칠 것인데, 좋아하는 곡을 칠 때마다 이런 종이를
쓰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십만 장도 더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결정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삼일 후, 교향악단장에겐
지방에 친척이 상을 당하여 5일간 다녀와야겠다고 하고, 부모님께는 출장연주를 간다고
하고서는 어머님이 숨겨두신 오천원을 가지고 머나먼 길을 정처없이 떠난 것이다.
오천원이라고 하면...
미국 달러의 가치로 이백불의 가치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100$이면, 4인 가족의 1년 생활비가 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여행을 다녀오면 여권은 반납을 해야한다. 그래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두 발로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중국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두만강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는데, 전기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기차가 아니라, 마차라고 표현을 하였다.^ ^ 
서울과 부산간의 거리 정도되니...KTX로 3시간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5일만에 도착하여 두만강에 도착을 하였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컴컴한 강변을
정탐하고 있는데.. 총을 든 보초가 '거기 섯!'하고 소리를 지를 때. 그의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것이 2001년 10월 17일 새벽 2시 정도였다고 한다...
중국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되돌아갈 것을, 붙잡히게 될 것을 생각하노라니, 떠날 때
가지고 온 오천원을 흔들면서...'여보세요~'라고 하니..금새 보초의 음성이 달라졌다.
오천원이라는 금액이 북한에서는 얼마나 큰가!....
보초는 이제 그를 호위하는 보초로 변했다. 김철웅 교수의 앞장을 서서 
중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그가 생각한 두만강이라는 것이 1미터랄까, 
2미터랄까 폴짝폴짝 몇 걸음을 뛰고나니...'잘~~가~~'라고 하더랜다. ^ ^
이제 중국으로 건너왔다. 탈북인이 된 것이다.
오직 그에게는 음악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땅 끝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뿐이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다면, 그 어떤 댓가라도 지불하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고향을 떠났다.
몇 십리를 걸어서...마을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문을 두들기니 
마흔 정도 되어보이는 남정네가 나오기에 자기에 대해서 소개를 시작하였다.
자기는 북한에서 왔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를 하니, 동네사람 왈 '피아노가 뭡넵까~~'하더라는 것이다. @.@
하하, 그는 그 때까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 연주다니며 기차역에서 굶어죽은 이들의 시체를 보기는 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관심을 기울여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피아노만
할 수 있으면 세상 어디를 가도 다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김 교수에게
동네사람들 모두에게 물어도 피아노를 본 사람은 몇 안될 것이라는 대답은...
배고픔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하는 것이 우선 급하게 되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에...
가을겆이로 벼를 베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몇 시간이면 해낼 수 있는 분량을
그는 이틀이나 걸려서 벼를 베었다. 그리고 고운 손에는 온통 물집이 잡혔던 것이다.
거기다가 중국공안인들이 탈북자들을 수색하기 위하여 하루에 한 번씩 동네를 검문
하다보니, 어느날 주인장께서 몸을 숨길 수 있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을 
안내해주더라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찾아간 곳이 해발 1500미터의 산판이었다. 영화 크로싱에 나오는 차인표가 
했던 그대로 자신이 그렇게 일해야만이 어설픈 빵 2개에 죽 한그릇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서울에서 본 죽이라는 간판만 봐도 신물이 날 정도로 죽을 먹었다고 했다. ^ ^
아랫지방이 영하 20도를 기웃거리고 있었을 때였으니, 그 높은 곳의 기온은 오죽하였으랴!..
잠자는 곳이란 것이...
유리창문 하나 없이 비닐로 막어져 있는 곳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 곳에서 유일한 낙이 하나 있었는데...일을 마치고서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KBS 사회교육방송 채널이 잡혔다. 그것을 듣다가, 어느날 싸이클을 조금씩 
돌려보기 시작하니 극동방송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귀에 익었던 곡들이 들리곤
했는데, 그 중에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곡이 나올 때...생전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성령체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몇일 후...산판 사무실에서 그를 불렀다...
뭘 잘못했을까, 이 곳에서 내버려지면 또 다시 시작될 배고픔과 추위를 생각했는데..
같은 언어를 쓰는 탈북인을 만난 것이다.그 사람은 탈북하여 4년동안 중국 전역을 돌면서
북한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는 일로 의식주를 해결하다가 갈 곳이 없어 산판으로 들어
왔는데..일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면서 귀 넘어로 들었던 김철웅 교수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리고 교회로 가면 밥은 먹여준다면서 교회로 가자고 청하는 것이다.
그가 어려서 들었던 교회...
여섯살 때인가, 영화같은 곳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십자가가 걸려있는 어두컴컴한 곳에
한 사람이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는데, 벼란간 쏴! 하더니 총소리가 들렸던 교회.
어린 그에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았던 교회. 그 교회라는 곳으로 가자는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는 아니간다고 단숨에 거절을 했다.
'밥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에 가서 굽히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노동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라고 전하고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그의 마음을
붙들었던 한 마디가 있었다. '교회에 가면 피아노가 있는데...'라는 것이었다.
피아노가 있다는 소리에...
언제 그가 거절했던가 싶을 정도로...
자존심이고 뭐고, 그 길로 올라가서 짐봇따리를 꾸려서 따라 나섰다.
그리고 교회라는 곳을 갔는데, 피아노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성경 통독반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이른 아침에 시작된 성경통독이 저녁 12시에서나 끝나는 곳이었다.
하루에 1독 반을 한다고 한다. 무조건 성경을 읽기만 하는 것이다. 읽는 가운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그네들의 생각이었는데, 성경이라는 것이 성령께서 마음을
열으셔야만이 읽혀지는 것인데, 너무나 지루했던 기억만이 남아있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곳에서 그는 성경에 대해서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날, 다섯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도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교회 문을 열었을 때...보였던 피...아...노...
그는 '하나님, 감.사.합.네.다'라는 여덟 글자의 기도를 처음으로 드렸다.
그순간, 갑자기 그의 눈 앞에 흐뿌연 것이 가로막았다. 그것은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피아노. 그 피아노때문에 삶과 죽음..생사의 귀로에 서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수 십년의 세월이 한 순간에
꿰뚤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에 그의 언어를 금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단걸음에 피아노 앞으로 달려나가서 뚜껑을 여는 순간...
웬 뇨자가 앞을 가로 막으며..'이거 만지면 안되는디요...'하더라는 것이다.
182cm의 48kg 삐다구에 다 낡은 옷차림이...'어찌 네가 피아노를 알겠는가!'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 교회 반주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철웅교수는 
'아~~나도 피아노를 조금 아는데요..'하면서 청을 넣어 피아노 건반위에 
손을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건반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다. Amazing Grace라는 곡을 쳤는데...
피아니스트 김철웅 님은 그 곡을 자신의 곡이라고 전세계에 
다니면서 연주하는데 아직 저작권법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 ^ 
지금 우리가 직접 들어도, 
또 CD에 있는 첫 곡으로 들었을 때에도 감동 그 자체인데, 
중국 땅. 그 척박한 곳에 있던 분들이 들었으니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피아노를 몬만지게 하던 반주자는 온데간데 없고 즉흥부흥회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그는 피아노 반주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매일 밥만 먹으면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솜씨가 어디 보통 솜씨인가!...예전 반주자는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쳤지만,
왼손 반주는 모두 도.미.솔만 쳤던 그녀의 반주를 듣던 분들에게 은혜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밥이란 것이 해결이 되면, 자신의 사회적인 명예를 생각하게 된다...
그 때, 악한 마귀눔이 그에게 잠시 잠시 놀러와서는 한다는 말인즉슨,
'김철웅! 너 참 피아노 잘 친다. 너가 얼마나 피아노 잘 치는줄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그 곳에서 자신이 피아노를 제일 잘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곤 유혹이
다가왔다. 이렇게 연주할 것이 아니라, 국적을 가지고 치면 어떻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위조 여권을 만들게 되었다. 함께 만들었던 네 여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기를
'못생긴 네 여자와 잘생긴 미남'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그에게 달라붙은 
마귀는 그의 영혼을 교만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하, 네 명은 공항에서 통과하여 한국으로 갔는데..
우쭐대며 다섯번째로 서있던 김철웅 교수는 붙잡히게 된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다섯명의 경찰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소리에 그만 웃고 말았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찌 가슴까지 웃을 수 있는 말이었단 말인가!...
실컷 두둘겨 맞고서 북한으로 이송되는 기차에 탔을 때...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기도'였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지만, 어느 장소이든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딱 한 번만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딱 한 번만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나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니 
묵인 손이 풀릴 수 있는 화장실 가는 방법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어 창 밖을 내다보니 대단한 속력이었다.
하하, 그 순간 옆 창문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경찰과 얼굴이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죽었구나 싶었는데, 김교수는 경찰이 보이는데, 경찰은 교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때. 김교수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체험했다고 한다. 지쳐있던 몸에서
새 힘이 불끈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자신도 알 수 없는 그 어떤 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우여곡절 끝에 기차 위로 올라갔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승강구로 나왔지만, 기차의 속도를 보니 뛰어내리면서 다치거나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기차 위로 올라가서 기차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걸어가는 순간
'007 제임스 본드'가 생각나더라는 것이다. 갑자기 무보수의 스턴트맨처럼 느껴졌다.ㅋㅋ
다음 기차역으로 들어가면서 속력이 줄어들 때...그는 탈출을 해서 교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면서 제3국을 통하여 탈출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였다. 몽고였다.
어느 날, 택시를 대절해서 몽고로 향하는데, 그 때까지 없었던 검문소가 생겼더라는 것이다.
검문소에서 위조 여권을 보여주니..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 때 마침 관광버스 한대가
도착한 것이다.
하하, 어찌 이런 얄궂은 일이 있단 말인가!...
중국의 인구가 13억인데, 그가 위조한 여권의 실명인이 그 관광버스에 타고 있던 것이다.
검색대에서도 너무나 기가 막혀서 말을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김철웅 교수는
또 다시 북한으로 이송되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이제는 마지막이구나...어떤 길도 보이지 않을 때,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날쌘 검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도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드렸던 기도와는 다른 기도였던 것이다.
그 기도는 '한 번 만 더 살려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저는 주님의 것이오니...
살리시든 죽이시든 당신 뜻데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였다.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생명을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로 양도하는 순간이었다. 남은 생은 주님 뜻데로 살겠다는 다짐의 순간이었다..
50명의 탈북인을 후송하는데...
150명의 중국공안인의 감시를 받는다고 한다. 이북에 도착하면, 
단 두 명의 군인이 나와서 탈북인을 맞이할 정도로, 그 때. 이북에는 많은 병사와 
민간인들이 천재지변으로 죽고, 배고픔에 죽었던 때여서 곳곳의 행정업무가 마비된때였다.
돌아가면 그는 정치범으로 수용소에 가거나 총살형으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선택하고픈 것은 그렇게 죽을 바에야 차라리 가는 길에 죽음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을 붙잡고 있는 그 어떤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자기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외치고 싶었기에 살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리 길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 험한 꼴로 부모님께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 때...
윗층에서 그를 담당한 상급병사가 불렀다.
그리고, 그 담당자는 김철웅이라는 사람이 피아니스트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부친께서 도지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런 상급자가 '자기를 아느냐?'고 묻는데, 
전혀 기억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뵌적이 없다'고 했다..
하하, 부친께서 도지사로 있을 때..수하에 있던 부하직원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드나들던 사람이었기에 전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 승진을 할 수 없는데, 이 부하 직원의 출신성분을
부친께서 정정하여 승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지금은 중앙고위부 
관직에 올라서 지금 이렇게 둘이서 마주하고 앉게 된 것이다.
그런사람이니...
이제 김교수는  아버지께로 돌려보내지겠구나...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말인가, 육신의 아버지에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담당자는 김철웅 교수 손을 꼬옥 붙잡고서 당부하기를..
'다시는 붙잡히지 말아라!...'라는 것이었다.
그 분의 부탁때문에 지금까지 자기는 잡히지 않고 있다고 하여 다함께 웃었다.
중국에서 53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그는 굽이굽이 삼년의 세월을 
거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철웅 피아니스트는 
우리들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간증이 시작된지 시간이 꽤 흘렀다. 할애받은 시간은 30분이었지만, 
수요예배에 참석했던 분들은 떠날 줄을 모르고 남은 이야기를 듣고싶어 하셨다.
그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겠는가!...시간이 부족한 것이 한이었지만,
탈북 청소년에 대해서 특별히 고조된 억양으로 새 이야기를 시작하듯이 이어갔다.
탈북인... 
어른들은...그렇다치고,
탈북 청소년 그 아이들은 그저 부모 따라서 왔고, 어떤 아이는...
배고픔과 추위에서 도망쳐 멀고 먼 길을 찾아 남한으로 내려왔건만,
그네들에 대한 시선이 아직 곱지만은 않은 현실에 대해서 토설을 하였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군대를 가야만 된다'느니...하면서...왕따를 시키거나,
학령기를 놓친 청소년들이 삐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 학교를 가지 않는 현실들이며..
전 세계가 경제불황이기도 하지만, 남한의 여건이 여러가지로 좋지 않다보니, 탈북한
이 청소년들이 새터민으로써 자리를 잡아 갈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탈북 청소년들을 모판에 비교하였다..
그들의 적응기가 통일의 교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종과 같은 이 아이들이 따닷한 관심과 기도를 통해서 잘 자라나면,
통일을 앞댕길 수 있다는 것이 김철웅 교수의 신념인 것이다...
북한에 너무나 많은 것을 퍼주었다고들 한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은 많은 도움이 요청되고 있기에...
남한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북한을 도와주느냐고들 하지만,...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 못지않게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사랑만이 그네들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복음이라는 것이다. 복음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그네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단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어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 그 사랑의 복음이
그네들의 가슴을 녹이게 될 것이며,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도 만국의 언어인 이 음악으로 통일을 단 15분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면서, 북한의 인권소식과 함께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은 
김교수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네 가지로 요약했다.
주님은 낮은 자를 높이시기도 하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란다.
하나님은 한 번 맺은 인연, 한 번 맺은 약속을 절대로 져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란다.
하나님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신음소리의 기도까지도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항상 들어주시는 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태산을 옮겨주시는 분이시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까불면 죽는다'는 것이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교만해지려고 할 때...
모든 것들을 흐트러놓으시는 모습을 그는 체험했다. 사람의 힘으로 할려고 할 때에는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도 보았다. 그가 언제라도 까불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분
께서 그의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그는 알아낸 것이다..
거의 2시간에 가까운 간증을 어떻게 몇 장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이 내용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행간에 감춰져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님께서 읽는 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행간에 숨겨진 언어들을 찾아내기를..
두 손을 모으며, 혹시라도 내용이 길었다고 느껴지는 분이 계시다면, 성령께서 
그분의 영안을 밝혀주시기를 기도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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