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다수와 소수 // 최용진 신부님
2008년 12년 9일대림 제2주간 화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 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 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 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의 의견에 따라 행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근대 영국의 철학자 벤담이 정리한 최대다 수의 최대행복을 근간으로 확고히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논리적이라 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대표적 원칙인 다수결의 원칙은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다 보니 항상 소수는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다수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눈이 두 개인 물고기가 정상인데 눈이 하나밖에 없는 물고기들 속에 있으면 그 물고기는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 이 정상인데 모두가 경쟁을 바란다면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말하게 됩니다.
어나곤 합니다. 이런 경우 다수의 양을 보호하기 위해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한 마리 양에 대한 포기를 반대하시는 것은 이런 선택이 결국 경쟁과 의심,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남들도 다 하기 때문에 내 행동이 죄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판단이 틀린 것이 옳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희생 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어쩌면 주님은 소외되고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소수가 되어버 린 듯도 합니다.
이 바로 정의입니다. 내가 그 한 마리의 양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이 내 의견을 따르 지 않고 내 판단을 비난할 때, 주님은 나를 찾아오시고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랬을 때 주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최용진 신부(서울대교구 연희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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