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개신교에선 믿음만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데 가톨릭에서는 굳이 선행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었입니까?
개신교에선 믿음만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데 가톨릭에서는 굳이 선행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었입니까?
구원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다만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그 문으로 들어가는 걸음은 내가 선택하는 자유의지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살고자 하는 원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은총임을 아는 까닭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지면서 ‘믿음만', ‘그리스도만', ‘성경만'을 주창하였습니다. 때문에 이 물음에는 성경에서만 그 답을 찾아드리고 싶군요. 마르틴 루터의 주장이 있는 구절(에페 2,8 참조)에 바로 이어진 구절이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에페 2,10)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이는 ‘선행을 하도록 미리 준비하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일은 하느님과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뿐 아니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셨기에 십계명과 아울러 ‘이웃을 위한 배려'를 세심하게 일러주셨습니다.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 구석까지 모조리 거두어 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고 남은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레위 19,9). 심지어 포도밭에서 포도를 남김없이 따 들여서도, 떨어진 포도를 주워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남겨놓아야 하는 까닭은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에 일조를 해마다 바치는 것(신명 14,22 참조)과 별개로 “세 해마다 바치는 십일조”(신명 26,12)도 말씀하셨지요. 이는 세 해에 한 번씩은 십에 이조를 봉헌하라는 말씀인데, 사각형 밭의 네 귀퉁이를 계산해보면 21.5퍼센트 정도입니다. 내가 일한 보수의 21퍼센트 이상이 내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나누어야 하는 자선의 최저선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난한 이웃이 존재하도록 허락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된 우리들이 흔쾌히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누구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의 손길'을 주는 그리스도인을 원하신다는 하느님의 선언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복'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고백임을 믿습니다.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신명 26,19)는 다짐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이 복된 작업을 바오로 사도는 정말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지요.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유해져 매우 후한 인심을 베풀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그 인심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러한 구제 활동 노력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넘치도록 감사를 드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구제 활동을 높이 사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는 여러분의 순종을 보고 또 자기들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도 함께 나누는 여러분의 후한 인심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2코린 9,11-13).
복음의 삶이란 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는 ‘적당한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돕는 사람이라는 하느님의 뜻으로 새겨듣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고 기적을 일으켰던 사람들에게 “누군지 모른다”(마태 7,23)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이웃에게 베푼 작은 사랑을 당신을 향한 큰 사랑으로 받으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염소와 양의 비유'(마태 25, 31-46)로 배웁니다.
장재봉│ 부산교구 사제이며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16세기 말 중국에서 선교한 마태오 리치 신부와 예수회원들은 유교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반대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효도의 표현이라 보고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회보다 반세기 늦게 중국에 들어가 선교한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식을 미신적 행위로 보고 반대하였습니다.
도미니코회가 문제를 제기하자 1645년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조상제사를 금하는 훈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예수회가 자신들의 선교원칙을 교황청에 설명하자 1656년 교황 알렉산더 7세는 다시 중국에서 예수회의 선교방침을 허용하는 훈령을 내립니다. 이런 결정에 도미니코회가 또 이의를 제기하자, 1669년 교황청은 제기된 문제와 환경에 따라 인노첸시오 10세의 훈령과 알렉산더 7세의 훈령이 둘 다 지켜져야 한다고 신축성 있는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그 후 이것이 다시 문제가 되자, 오랜 검토 끝에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조상 제사를 금하는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클레멘스 11세의 칙서를 재천명하며 이 문제에 관한 논란을 금하고, 불복하는 자는 엄한 벌과 함께 중국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백 년 동안 계속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1791년 전라도 진산의 선비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조상의 제사를 폐지하고 그 신주(神主)를 불태워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효와 조상숭배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사회에 커다란 충격이요 파문이었습니다. 온 조정이 들끓고 상소가 빗발치듯 하였으므로 정조 임금은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천주학을 금지시키며 서학 책을 불태워버리도록 명령하였습니다(신해박해).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은 부모도 모르는 짐승의 무리로 낙인 찍혔으며, 기존 윤리질서와 사회체제를 파괴하는 불온세력으로 몰려 백 년 동안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관용적인 조치를 내릴 때까지 조상제사 문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극동 선교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1958년 한국 주교단은 ‘한국교회 공동 지도서'에서 죽은 이의 사진이나 이름만 적힌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음식을 진설하는 행위를 허용하였습니다.
유교가 강조하는 효의 정신은 생명의 근원인 부모님과 선조께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데에 있습니다.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는 보본(報本)과 그 은혜에 감사하는 보은(報恩)의 마음에서 비롯된 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도 계속되어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 함'(중용 19장)으로 이어지며, 특히 제사를 통하여 실천됩니다.
그러므로 조상제사의 목적은 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자녀로서 생명의 근본인 부모님과 선조께 보본과 보은을 계속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돌아가신 조상님이 와 계신다고 믿고 절하면 그것은 분명히 미신 행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재확인함으로써 부모님과 선조와 하느님께 더욱 효성을 드리기 위함이요,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선조와 일치를 느끼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이중섭│청주교구 사제이며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와 분평동 성당 주임사제로 일하고 있다.